스마트폰 케이스가 붉은 물을 들인 듯 새빨간 색깔이었다. 양복 상의 아래 받쳐입은 셔츠도 연보라에 가까운 분홍빛이다. 박일환(70)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가 말했다. “공무원일 땐 저도 까만색·남색 위주로 옷을 입었어요. 이젠 맘대로 입지요. 방송인이 됐으니 좋아하는 색으로, 하하!” 박 변호사는 “휴대전화 케이스도, 셔츠도 직접 골랐다”며 “나이 먹으니 주의력이 자꾸 약해져서 스마트폰 케이스도 눈에 딱 띄는 색깔로 해둬야 엉뚱한 데 놓고 와도 바로 찾을 수 있다. 알고 보면 실용적인 이유”라며 밝게 웃었다.

박일환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펀드 매니저인 딸의 권유로 유튜버가 됐고 자막도 달아준다”며 “딸이 ‘실버 버튼’ 유튜버를 등단시킨 걸로 임무를 다했다고 하는데, 내겐 정말 든든한 지원군”이라고 했다. /고운호 기자

대법관(2006~2012년)을 지내고, 변호사로 활동 중인 그의 또 다른 직업은 법률 전문 유튜브 크리에이터다. 2018년 12월부터 유튜브 채널 ‘차산선생 법률상식’을 운영하고 있는데, 현재 13만5000구독자를 모으며 구독자 10만명 이상 크리에이터에게 주는 ‘실버 버튼’을 받았다. 시종일관 덤덤한 대구 말씨로 살면서 한 번쯤 겪게 되는 일상 속 법률 문제를 3분 남짓 짧은 영상으로 쉽게 설명해준다. 그동안 쌓은 콘텐츠 중에서 ‘부모의 빚도 상속된다’ ‘부동산 거래에서 내 권리를 지키려면?’ ‘명예훼손은 어떤 경우에 인정되는가’ 등 자신의 권리를 누리되 타인의 권리를 해하지 않는 삶의 상식들을 모아 ‘슬기로운 생활법률’도 펴냈다. 지난달 20일 출간하자마자 1쇄 2000부가 다 팔려 일주일 만에 2쇄에 돌입했다.

2년여 만에 13만 구독자를 불러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비결이랄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하며 운을 뗀 그는 “사실 재미는 없는 주제잖아요. 보는 분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 서론, 본론, 결론이 있는 이야기를 짠 뒤 되도록 마지막에는 의문점을 풀어주려고 노력합니다”라고 했다.

구독자 나이대는 25~35세가 80%로 가장 많다.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6대4 정도다. “내 나이대는 없다”며 다소 아쉬워한 그는 “법률에 대한 젊은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 좀 의외였다”고 했다. 현실에서 법을 다루는 젊은 변호사나 로스쿨생들은 실제 판례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관심이 많고, 대학생 등 일반인들은 법조인의 생활이나 옛날 화제가 된 재판 이야기를 재미있어한다. 그의 유튜브는 악플이 없는 ‘댓글 청정구역’으로도 유명하다. “요거는 좀 재밌겠다 싶은데 댓글이 안 달리는 것도 있고, 별거 아닌 것 같은데 확 또 많이 보는 경우가 있어요. 그 간극을 찾아가고 메우며 구독자들 반응을 살피는 게 요즘 소소한 삶의 즐거움이지요, 하하.” 다른 유튜버들의 인기 채널도 참고 삼아 종종 들여다본다고 했다. “또 다른 법조인이 하는 유튜브도 봤는데 다행히 그보다는 내 유튜브가 좀 더 쉽고 재미있는 것 같아 내심 안도했다”며 슬쩍 농도 건넸다.

‘차산(此山)’은 어릴 적 조부에게서 한시를 배울 때 읽었던 당나라 시인 가도(779~843)의 시에서 따왔다. “스승께선 이 산 속에 계신데[只在此山中(지재차산중)], 구름이 짙어 어딘지 알 수 없다는 문구가 마음에 들더라고요.” 그는 “판사, 대법관, 변호사, 차산 선생 중에서 차산 선생이 제일 좋다”며 “나라는 인간을 그대로 표현해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이 없는 세상은 나쁜 법이라도 있는 세상보다 못해요. 악법이라도 일단 있으면 계속 고치면 되는데, 무법천지면 법을 만들어야 하고 새로 만드는 건 참 어렵지요.” 그는 “그래서 법을 알면 법은 당신 편이 되어준다”고 했다. “법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내가 안 지키면 남도 안 지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