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 15일 만 50세 생일을 맞는 프로골퍼 양용은은 10㎏ 넘는 트로피를 공깃돌처럼 가볍게 들어 올렸다. ‘세계에서 가장 큰 골프 트로피’로 알려진 워너메이커 트로피의 복제품으로, 진품의 85% 크기이지만 묵직했다. 2009년 메이저 대회인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십에서 우승하고 받았던 이 트로피를 들고 활짝 웃는 모습이 그때와 다름없다고 하자, 양용은은 “왜 이러세요. 노안도 오고, 여기저기 안 아픈 데가 없어요” 하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내년 생일과 함께 그는 50세 이상 선수들만 나서는 미 PGA 챔피언스 투어에 데뷔한다. 신인이자 막내가 되는 셈이다. 2년 먼저 챔피언스 투어에 입성해 올해 첫 우승까지 한 최경주(51)에 이어 ‘한국 선수 2호’가 된다.
이달 초 일본 투어 생활을 정리하고 입국해 오는 17일 하와이로 출국하는 그를 서울 집 인근 골프 연습장에서 만났다. 프로골퍼로 지난 25년간 야생마처럼 세계무대를 누빈 그는 “지난 2월 교통사고를 당한 타이거 우즈가 회복해 다시 골프채를 잡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정말 반갑더라”며 “챔피언스 투어에서도 다시 함께 경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2022년 챔피언스 투어 1년 시드를 받은 양용은이 꾸준히 성적을 내고, 1975년생인 우즈가 골프를 계속해 2025년 챔피언스 투어에 진출해야 이뤄질 수 있는 바람이다.
해외 언론이 ‘타이거 킬러’라 부르는 양용은의 골프 인생에서 우즈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양용은을 골프 사상 최대 이변의 주인공이자 ‘최고의 다윗’으로 만들어준 이가 우즈다. 15회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한 우즈는 딱 한 차례 메이저 대회에서 역전패당한 일이 있다. 바로 2009년 PGA챔피언십에서 양용은에게 당한 상처다. 양용은이 2006년 유러피언투어 HSBC 챔피언십에서 이변을 일으키며 우승했을 때도 공교롭게 우즈가 2위였다. 그는 “2009년엔 내가 100% 지는 경기라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며 “우승한 뒤 1주일 동안 잠을 자지 않아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을 정도로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양용은이 챔피언스 투어에서 뛸 수 있게 된 교두보도 PGA챔피언십 우승 덕분이다. 챔피언스 투어에 ‘역대 우승자’ 자격으로 뛰기 위해서는 최소 4포인트가 필요하다. 일반 대회 우승은 1포인트, 메이저 대회 우승은 3포인트다. 양용은은 2009년 혼다 클래식까지 포함해 4점을 쌓았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동반 라운드를 하고 미프로야구 메이저리그 경기에서 시구를 하는 영예도 경험했다. 그는 40대 초반 찾아온 긴 슬럼프를 딛고 2018년 일본 투어에서 우승을 추가한 오뚝이 골퍼이기도 하다.
양용은은 “나이 50이면 하늘의 뜻을 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내게는 골프가 천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골프채를 잡으면 신바람이 나고 골프를 통해 정말 좋은 분을 많이 만났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도 골퍼의 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내년 1월 챔피언스 투어 하와이 개막전(미쓰비시 일렉트릭 챔피언십)을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인생 이모작의 기회인 만큼 한번 더 신인의 마음으로 골프를 최대한 즐기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