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코로나로 예순네 분이 사망했어요. 벽제와 양재 화장장 화구는 29개밖에 안 돼요. 우리 어머님은 어젯밤 돌아가시긴 했지만, 내일이나 화장이 가능할 것 같아요.” 서울 노원구의 한 장례식장. 마음 급한 유족에게 장례지도사 ‘손 팀장’이 상황을 조근조근 설명하고 있었다.
2011년 겨울은 지금처럼 ‘청년’ 영입 바람이 뜨겁게 불었다. 두 청년이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85년 동갑내기 이준석과 손수조. 손수조는 이듬해 부산 사상구에서 출마했다. 문재인 당시 민주통합당 대표를 겨냥한 ‘자객공천’ 카드였다. 득표율은 문재인 55%, 손수조 43.7%. 2016년엔 장제원 무소속 후보에게 패했다. 그때 ‘현실 정치’를 떠났던 그를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작은 상조업체 ‘팀장’ 명함을 들고 있었다.
“1년쯤 전, 장례업체를 하는 지인이 함께 사업하자고 제안했어요. 먼저 현장을 알아야겠다 싶었죠.” 서둘러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땄다. 그가 처음 입관식에 들어간 날은 지난 6월 11일. 국민의힘에서 당대표가 새로 선출된 날이었다. “여러 곳에서 저한테 축하 전화가 왔어요. 이준석씨가 당대표가 되니 저도 한자리 하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저와 이준석씨는 스타일도, 갈 길도 달라요.”
새내기 장례지도사는 염할 때마다 운다. “스스로 세상 떠난 젊은 분들을 자주 만나요. 사망 후 일주일 넘어 발견된 30대 남성분을 모신 적이 있는데요. 변색된 피부, 덥수룩한 수염(숨이 없어도 수염은 자란다)에 덩치가 좋은 분이었어요. ‘살아있을 땐 참 괜찮았을 텐데’ 하는 마음에 눈물이 많이 났어요.” 그의 사업 목표는 ‘전에 없던 상조 회사 시스템’을 만드는 것. “요즘 상가에선 손주 세대가 부모들에게 이것저것 코치한다”며 그런 세대를 겨냥한 모델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10년 전, 손수조·이준석 두 ‘키즈’는 같은 출발점에 있었다. 이젠 다르다. 미련이 없을까. “총선에서 두 번 떨어지고 다시는, 다시는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정치는 평생 고질병 아니냐’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지금 또 ‘거의 정치’를 하고 있어요. 차세대미래전략연구원(원장 장태평)에서 연구위원으로도 일해요.” 그는 지자체 선거에 도전하는 2030을 위한 ‘정치 입문 강의’를 하고 있다. 선거법, 회계장부 정리, 연설문 작성 등 실무 중심이다.
“‘키즈’형 정치 입문은 한계가 너무 커요. 이준석 대표는 특별한 개인기로 성공한 거고요. 청년이 세력을 이뤄야 이 나라 정치가 바뀝니다. 그걸 꼭 이루고 싶어요.” ‘장례지도사’는 정치 재개를 위한 밑밥인 걸까. “유족에게 가장 필요한 건 위로인 것 같아요. 제가 공감 능력이 뛰어난 편이거든요. 그래서 이 업을 생업으로 정한 겁니다. 이게 제 ‘본캐(본래 캐릭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