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미국 워싱턴DC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렸던 CNN 주최 연례행사 ‘올해의 영웅들’ 시상식에서 참석자들의 시선이 수상자가 아닌 한 축하객 쪽으로 쏠렸다. 1970년대 인기 TV 시리즈 ‘원더우먼’의 주연 린다 카터(70)였다. 흰색 투피스 정장을 입고 온 그는 얼굴 곳곳에 주름이 져 있었지만, 원더우먼 시절의 얼굴 윤곽만큼은 뚜렷했다. 그가 비스듬히 선 채 한 쪽 손을 허리에 얹는 특유의 원더우먼 포즈를 취하자 환호성과 함께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왕년의 TV 스타 카터가 나이 일흔 살에 의욕적으로 시작한 ‘인생 2막’으로 모처럼 주목받고 있다. 음악인으로서 행보도 재개했고, 무려 40여년 만에 원더우먼으로 스크린에 본격 컴백한다. NBC 간판 프로 투데이 등과 잇따라 인터뷰를 갖고 근황을 알리고 있다.
앞서 지난 10월 할리우드 실사영화판 원더우먼 3편의 제작 계획이 공개됐을 때 외신들은 카터의 출연 사실을 긴급 타전했다. 1976~1979년 TV 시리즈 원더우먼으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2020년 12월 원더우먼 실사영화 시리즈 2탄 ‘원더우먼1984′에서 카메오로 잠깐 얼굴을 내민 바 있다. 그러나 3편에서는 주연 원더우먼 역의 갈 가도트(36)와 함께 호흡을 맞추며 훨씬 비중 있는 캐릭터로 등장할 예정이다. 2017년 1편부터 실사판 원더우먼 영화를 연출하고 있는 여성 감독 패티 젱킨스(50)는 피플지 인터뷰에서 “린다는 이번 영화를 위해 가장 먼저 접촉했던 배우 중 한 명이다. 그녀와 함께 작업할 수 있게 돼 영광”이라며 ‘원조 원더우먼’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앞서 카터는 신곡을 낸 가수로도 주목받았다. 지난달 자신이 작사·작곡에 참여한 싱글곡 ‘휴먼 앤드 디바인(Human and Divine)’이다. 카터는 노래와 연기 모두 재능을 보이는 아이돌 연예인의 원조 격이다. 열아홉 살이던 1970년 가수 데뷔 음반을 냈다. 그런데 2년 뒤 미국 대표로 미스월드 선발 대회에 출전하면서 ‘비주얼’로 우선 주목받게 됐다. 이후 1976년부터 네 시즌을 원더우먼으로 살았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시청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지만, 원더우먼의 강렬한 이미지는 연기는 물론 음악인으로서 자신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데 제약이 됐다. 카터는 이후 영화와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했지만, 원더우먼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틈틈이 재즈·록 등 다양한 장르의 앨범을 내며 음악을 놓지 않았다.
신곡은 장중하고 애잔한 분위기의 발라드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계기는 올해 2월 37년간 함께 살았던 남편과의 사별이었다. 카터는 최근 음악 매체 ‘아메리칸 송라이터스’ 인터뷰에서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며 “이 노래를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앞으로도 음악과 영화 작업을 의욕적으로 병행할 뜻을 밝혔다 “새로운 것을 쓰고, 고치고, 제작 후 과정을 거쳐서 작업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영화 제작과 곡 쓰기는 닮았다. 특히 많은 이와의 협업을 통해 성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