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밖으로 드러나는 사람이 아니에요. 대통령의 마음이 닿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종이에 한자 한자 정성으로 쓰는 사람일 뿐입니다”.

소순만 서훈팀장이 28일 오후 서울 자택에서 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소 팀장은 26년간 5명의 대통령이 수여한 훈장 증서를 직접 붓글씨로 써왔다. “종이에 붓글씨로 남긴 진심이 전달되기 바란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대통령이 수여하는 훈장. 이 상장을 정성 어린 붓글씨로 더 빛나게 하는 사람이 있다. 행정안전부 상훈담당관실 소속 소순만(60) 서훈팀장이다. 소 팀장은 26년간 서훈팀에 근무하면서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까지 총 5명의 대통령이 수여한 훈장 증서를 직접 붓글씨로 썼다. 대통령 친필 사인을 제외한 증서 내용은 모두 소 팀장 글씨체다.

이달 말 정년퇴직을 앞둔 소 팀장은 28일 “글씨를 쓰는 사람일 뿐인데 쑥스럽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명을 직접 붓글씨로 하셨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도 친필로 서명을 하셨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직접 성함까지 써드렸네요.” 대통령 명의로 수여하는 훈장은 연간 5000장 정도로, 26년간 대통령 훈장만 13만장 정도를 직접 썼다. ‘체육훈장’을 받은 골프선수 박세리·야구선수 박찬호, 대중문화예술인 최초로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배우 윤여정, ‘산업훈장’을 받은 대기업 총수들, ‘건국훈장’을 받은 애국지사들은 모두 소 팀장 글씨가 담긴 훈장을 받았다.

소 팀장은 “한글로 쓴 제 붓글씨가 전 세계에 나가 있다는 사실은 자랑스럽다”고 했다. 대통령이 각국 정상을 접견하면 ‘무궁화대훈장’을 수여하는데, 이 훈장 글씨도 모두 소 팀장이 썼다. 외국 대사들이 이임할 때는 ‘수교 훈장’, 한미연합사령관이 이임할 때는 ‘보국훈장’을 수여한다. 지난 7월 이임한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도 소 팀장이 쓴 훈장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서예를 즐겨했던 소 팀장은 1980년대 해운항만청 9급 일반 행정 공무원으로 입사해 국가보훈처, 농촌진흥청을 거쳐 1995년 총무처(현 행정안전부)로 왔다. 총무처에서 ‘붓글씨 시험’을 거쳐 훈장을 쓰는 전문경력관으로 채용됐고, 3년 후인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때부터 대통령의 훈장을 직접 썼다. 훈장 외에도 대통령 취임식 선서문,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영결식에서 한승수 국무총리가 읽은 조사(弔詞),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조사도 붓글씨로 직접 썼다. “조사는 프린트가 아니고 직접 붓글씨로 전부 썼죠. 내용이 몇 번이고 바뀌는 바람에 영결식 전날은 밤을 새웠어요”.

소 팀장은 “그래도 잊을 수 없는 훈장은 따로 있다”고 했다. “고인(故人)에게 드린 훈장은 잊을 수가 없죠. 특히 젊은 소방관이 순직했을 때, 그분께 드릴 훈장을 쓸 때면 지금도 마음이 아립니다”. ‘공무원으로서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여~’로 시작되는 훈장은 순직했다는 내용, 추서한다는 내용으로 끝난다고 한다. 그는 “보통 6급 이하의 어린 친구들인데, 자녀들이 어리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하는 사정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며 “이런 건 그만 쓰고 좋은 일로 훈장을 쓰게 해달라고 빌면서 쓴다”고 했다.

소 팀장의 글씨체는 일반적으로 아는 궁서체와는 다르다. “흔히 아는 ‘궁서체’는 한글 궁체인데, 궁(宮)에서 썼던 글씨예요. 그런데 그런 인쇄 글씨는 폼이 없고 멋이 적어서 약간의 ‘흘림’을 해서 제 나름대로 독창적인 체를 만든 거죠.”

이달 말 퇴직하는 소 팀장은 봉사 활동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한다. 이른바 ‘소순만체’를 알릴 시간이다. 퇴직 전에 서예 강사 1급 자격증도 땄다. “붓글씨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요즘은 친필로 글씨 안 쓰는 시대라지만 꾹꾹 눌러 쓴 친필이 주는 감동과 매력이 있거든요. 우리 서훈팀이 있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