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람들 입장에선 K팝 스타들이 인권(人權) 문제 같은 보편적 이슈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 것도 궁금합니다. 이제 K팝 가수들도 높아진 위상에 맞게 목소리를 내도 되지 않을까요.”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신기욱 소장은“K팝과 북한 인권 관련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이해의 깊이와 수준을 한 단계 높이고 싶다”고 했다. /신기욱 교수 제공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신기욱(61) 사회학과 교수는 8일 “미국 내 평범한 사람들이 한국에 관심을 갖는 것은 ‘K팝’과 ‘북한 인권’ 딱 두 가지”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신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미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가 오는 5월 한국학 프로그램 개설 20년을 맞아 ‘K팝 다큐’ 제작에 나선다. 이어서 북한 인권 관련 다큐도 제작할 계획이다.

신 교수는 본지 인터뷰에서 “K팝에 대한 관심을 한국학과 연결해 학문적 뿌리를 튼튼히 하고, 북한 인권을 새롭게 조명해보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그는 “실리콘밸리 대학들은 수요자 위주 학문 풍토가 강하다”면서 “학생·시민들 관심 위주로 연구 주제를 찾다 보니, 북(北) 인권과 K팝이라는 주제가 도출됐다”고 했다.

한국 내 제작은 탈북 다큐멘터리 ‘천국의 국경을 넘다’, K팝 산업 현장을 기록한 ‘나인뮤지스: 그녀들의 서바이벌’ 등을 만든 이학준 감독(경일대 교수·전 TV조선 PD)이 맡는다. 국내 K팝 제작 현장은 물론 북·중 접경 지역의 인권 운동 실상 등 기존에 보지 못한 영상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계획.

스탠퍼드 아태연구소 연구원들은 한국 제작진과 화상회의 시스템을 이용해 수시로 미팅하면서 다큐멘터리의 방향을 기획하고 있다. 다양한 출신·인종 연구원들이 참여하는 이 회의의 공식 언어는 한국어. 신 교수는 “학생들은 한국어를 독학으로 익히고 나는 알지도 못하는 걸그룹 ‘에스파’에 대해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라며 “작년에만 K팝 관련 강좌를 두 개 개설했는데, 비(非)대면 수업 등에 활용할 영상 자료가 마땅치 않아 다큐 제작에 나선 측면도 있다”고 했다.

미국 학생들과의 미팅에선 “K팝이 누리는 위상을 고려할 때 K팝 가수들은 미얀마 문제나 인권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 것 같다” “미얀마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 시위 군중이 민주화를 외치며 K팝 가요를 부른다는 것을 한국 가수들은 알고 있나” “K팝이 과연 지속 가능할까”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신 교수는 “미국인들은 지극히 미국적인 코드로 K팝을 읽고 있다”면서 “이는 K팝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대답해야 할 질문들”이라고 했다. 그는 “1970년대 한국의 권위주의 정부 시절 미국인들도 남한 인권 운동을 지지했다”면서 “지금 북한 인권이나 중국의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미국 지식인들 입장에선 매우 일관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1970년대 인권 분야에서 외국의 도움을 받았던 한국의 진보 세력이 정작 북한 인권 문제를 경시하는 것은 아이러니”라고도 했다.

신 교수는 “정말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 한번 만들어 요즘 한국 시리즈물들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넷플릭스를 통해 보급하는 계획도 생각해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