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마다 공약 내용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이제 참고서가 있으니 훨씬 쉽겠네요.”

발달장애인 등 정보 약자를 위한 쉬운 선거 책자 ‘정책 선거를 부탁해’를 만드는 사람들. 왼쪽부터 소소한소통 신수연 에디터, 발달장애인 이주형씨, 최재영 중앙선관위 정당과 사무관, 발달장애인 김선교씨, 백정연 대표, 발달장애인 송지연씨. /남강호 기자

지난 8일 서울 문래동 한 사무실에서는 ‘정책 선거를 부탁해’ 책자 감수회의가 한창이었다. 이 책자는 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자주 내놓는 공약 내용을 쉽게 해설해주는 일종의 참고서다. ‘철폐’라는 말에 대해 ‘이미 있는 것 중에 안 좋은 것을 없앨 때는 철폐라는 말을 쓴다’는 식으로 해설이 돼있다. 책자를 살펴보던 발달장애인 김선교(33)씨, 송지연(32)씨는 “평소 어려웠던 경제 용어나 장애인 공약을 이해하기가 더 쉬워지겠다”며 웃었다. 정보 약자를 위해 쉬운 정보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소소한 소통 백정연(42) 대표와 발달장애인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함께한 쉬운 책자 만들기 현장이다.

발달장애인 유권자는 작년 기준으로 20만6147명. 이들은 각 후보의 공약을 이해하고 자신이 원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하지만 공약에 자주 등장하는 ‘철폐’ ‘해소’ ‘개편’ 같은 한자어가 생소하고, 공보물이 어려워 판단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장애인 차별 철폐’라고 적힌 공약을 봐도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피플퍼스트 성북센터장인 송지연씨는 “투표한 지는 10년이 넘었는데 아버지가 투표하라는 사람이나 외모를 보고 투표했다”며 “점점 선거에 관심을 갖게 되고 정책적으로 알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공약을 한 번에 이해하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네이버 핸즈에서 일하는 김선교씨도 “투표 절차나 어떻게 투표하는지는 연습을 많이 했는데, 공약을 이해하기가 어려워 누구를 찍을지 판단을 할 수 없었다”고했다.

선관위는 발달장애인 등 정보 약자의 이해를 돕는 책자 제작에 처음 나섰다. 이번에 발간하는 ‘정책선거를 부탁해’ 책자에는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참여했고, 공보물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들을 쉽게 정리했다. 중앙선관위 이은혜 정당과장은 “단순히 선거 참여가 아니라 장애인들의 실질적인 참정권을 보장하자는 취지”라며 “장애인들도 각 후보의 공약을 이해하고 지지하는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책자에는 용어 해설이 주로 담겼다. ‘쉬운 공약 사전’ 코너도 있다. 전에 없던 것을 새로 만들 때는 구축, 설립, 수립, 신설….이미 있는 것을 고치거나 바꿀 때는 개선, 개정, 개편 등의 단어를 쓴다는 점을 알려준다. 투표 과정을 놀이로 익힐 수 있는 보드게임도 제작했다. 특정 정당의 로고나 기호, 색상은 피했다.

두 달간 제작한 이 책을 대통령 선거 직전인 2월 말 전국 각 복지관에 배포할 예정이다. 백정연 대표는 “이번 책자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올해 처음 대통령을 뽑는 비장애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장애인들이 정보에서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애쓰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