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른 서울 가서 삼겹살⋅비빔밥 먹고 싶어요. 따뜻한 어묵탕도 생각나고요.”
지난 12일 옌칭선수촌에서 만난 베이징 동계 올림픽 루지 국가대표 아일린 프리쉐(30)는 한국어로 또박또박 말했다. 그는 “2년 전 코로나 팬데믹 초기 훈련 못 할 때 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웠다”고 했다. 2016년 독일에서 귀화해 태극 마크를 달았다. 2018 평창에 이어 2022 베이징이 두 번째이자 마지막 올림픽이다.
“나이가 좀 많지 않은가요? 하하. 아직 젊죠. 3년 전 당한 부상 때문에 더 운동하면 제 몸이 힘들 것 같아서 은퇴를 결심했어요.”
◇”마지막 경기 아쉬워, 동료에게 미안”
루지는 썰매에 누워서 트랙을 내려오는 종목. 최고 속도가 시속 150㎞에 달한다. 프리쉐는 지난 8일 루지 여자 1인승 경기 마지막(4차) 시기 레이스 막판 썰매가 뒤집혔는데도 끝까지 붙잡고 미끄러지면서 19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목표 15위엔 못 미쳤다. 그는 “3차 시기가 괜찮아서 기록에 욕심을 좀 냈다”고 했다. 몸이 얼음 트랙에 쓸리면서 왼쪽 손가락과 어깨, 발, 다리에 멍이 들었지만 그는 “루지 선수에겐 흔한 일”이라고 했다. 이틀 뒤 팀 계주 경기 첫 주자로 나섰다. 출발할 때 손가락이 아팠지만 참았다. 같은 지점에서 또 넘어졌지만, 온 힘을 다해 균형을 다시 잡았고 레이스를 이어갔다. 루지팀은 13위를 했다. “마지막 경기라서 많이 아쉬웠어요. 계주 팀 동료에게도 미안했고요. 제가 넘어지면서 기록이 안 좋았어요.” 한숨을 쉬었다.
프리쉐는 루지 최강국 독일의 유망주였다. 내부 경쟁에 밀려 2015년 은퇴했다가 대한루지경기연맹의 귀화 제안을 받고 다시 트랙에 섰다. 독일 국적은 아예 포기했다. 한국 생활은 아침에 독일 빵을 못 먹는 걸 빼면 힘들지 않았다. “독일 빵은 바삭하고 담백한데 한국은 촉촉하고 달거든요.. 산 낙지를 집어넣는 연포탕을 봤을 땐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생물이 눈앞에서 죽는 걸 처음 봤죠. 그런데 맛은 나쁘지 않았어요.” 은행에 가면 독일에선 3주 걸리는 카드가 하루 만에 나오고 24시간 내내 뭐든 할 수 있는 것도 한국의 매력이라고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8위를 했던 평창 올림픽 여자 1인승 레이스다. “스타트 라인에서 조용히 출발했는데, 커브를 돌 때마다 제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트랙을 내려갈수록 점점 커졌고 마지막엔 엄청난 환호가 들렸죠.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레드벨벳의 ‘빨간 맛’을 자주 듣는 것도 평창 올림픽 개회식 때 들은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 생각이 나면서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행복한 여정, 한국인으로 남을 것”
평창에 나섰던 귀화 선수 15명 중 베이징에 간 사람은 3명뿐이다. 남은 이유를 물었더니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한국이 제 집이고 좋으니깐요.” 이번엔 손톱에 태극기 네일 아트도 했다. “제가 대한민국 국민이고 대표팀 동료와 함께한다는 의미예요.” 베이징에 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2019년 2월 월드컵 경기에서 트랙 벽에 충돌, 양손과 꼬리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수술대에 올랐다. “쿠션 없이는 앉지 못할 정도였어요. 1년 후엔 포기하고 싶었죠. 그런데 물리치료사가 ‘넌 잘하고 있어’라며 용기를 줘서 힘을 낼 수 있었어요.” 작년 여름에 달리기 훈련을 재개하면서 본격적으로 몸을 끌어올렸다.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해 보자고 마음먹었고, 올림픽에도 도전했죠.”
프리쉐는 당분간 독일로 가서 가족⋅친구들과 여행도 다니면서 쉬고 싶다고 했다. 의학⋅리서치 분야 인턴을 하면서 앞으로 뭘 할지도 찾을 예정이다. 어릴 때부터 관심 있었던 신경과학을 공부할 생각도 있다.
“공부를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올 거에요. 이젠 한국을 빼고 제 정체성을 말할 수 없어요. 한국인으로 계속 남을 거예요. 한국 루지 대표팀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고민 중이에요.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대표팀에서 저를 찾는다면 도움이 되고 싶어요.” 프리쉐는 “훌륭한 분들 덕분에 큰 부상도 극복했고,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 대표팀과 함께 한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전했다.
/옌칭=송원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