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물론, 중국 우한에도 수백 명이 모여 일하는 바이러스 연구소가 있는데 그간 한국엔 없었어요. 앞으로 우리 연구소가 ‘한국형 백신’을 만들 겁니다.” 지난 6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에서 만난 안광석 서울대 바이러스연구소 초대 소장(생명과학부 교수)이 이렇게 말했다.
서울대 바이러스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하면서 하루 확진자가 20만명 안팎 나오던 지난달 초 문을 열었다. 언젠가 또 반복될 수 있는 감염병 유행에 대비해 바이러스 관련 기초 연구를 하고, 이를 토대로 치료제와 백신 개발을 하는 게 목적이다. 연구소에는 자연과학대 교수뿐 아니라 의학과, 수의학과, 약학과 등 바이오 관련 학과 교수 24명이 참여했다. 안 소장은 “전문가들이 ‘금방 종식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코로나 바이러스가 2년 넘게 유행하는 걸 보면서 ‘아직도 바이러스에 대해 모르는 게 많구나’ 하는 반성이 학계에 일었다”며 “서울대가 바이러스 연구에 앞장서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다”고 했다.
안 소장은 그동안 국내에선 제대로 된 바이러스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중국은 사스와 메르스를 겪은 뒤 우한에도 연구소를 만드는 등 바이러스 연구 역량을 강화했는데 한국은 메르스를 경험하고도 연구 역량을 강화하지 않았다”며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는 바이러스를 다룰 수 있는 ‘BL3 시설’(생물안전 3등급인 고위험 병원체 취급 시설)도 해외엔 많지만 한국엔 거의 없고, 일부 바이러스 관련 연구소도 예산 지원이 안 돼 껍데기뿐인 곳이 대다수”라고 했다. 코로나가 유행한 뒤에야 서울대를 포함해 기초과학연구원(IBS)과 카이스트(KAIST)가 각각 바이러스 연구소 문을 열었다는 것이다.
바이러스 전문 연구 인력도 부족하다. 서울대 생명과학부에서도 6년여 전 바이러스 분야 교수 2명이 퇴직했는데, 역량을 갖춘 사람을 찾지 못해 여전히 후임을 못 뽑았다고 한다. 안 소장은 “바이러스 연구가 그간 등한시돼 전공자들의 처우가 열악하다 보니, 해외에 나가 있는 유능한 제자들도 귀국할 생각을 안 한다”며 “코로나 유행 기간 바이러스 분야 연구비 지원이 늘어났는데, 정작 그걸 받아 연구할 사람이 없는 씁쓸한 상황”이라고 했다.
연구소는 우선 한국형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면서 젊은 바이러스 전문가를 키울 계획이다. 안 소장은 “연구소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대비하는 예비군 기지”라고 강조했다. “언제든 전쟁에 나설 수 있도록 미리 훈련하고 대비하는 ‘예비군’처럼, 감염병 유행이 없을 때에도 꾸준히 바이러스 기초 연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코로나가 풍토병(엔데믹)이 되면 매년 백신을 맞아야 할 텐데, 지금부터 백신과 치료제를 만드는 경험을 계속 쌓아야 앞으로 국산 백신을 만들 수 있다”며 “코로나 사태로 바이러스 연구의 중요성이 커졌는데 이게 ‘반짝 관심’으로 끝나지 않도록 앞으로도 쭉 지원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