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고 묵상을 해야하는 수녀가 주먹을 휘두르고 발차기를 하니 다들 미쳤다고 합니다.”

린다 심 수녀가 20일 세계태권도품새대회가 열리는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발차기를 선보이고 있다. /고운호 기자

20일 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 대회장인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가녀린 여자 선수의 함성이 홀에 울려 퍼졌다. 싱가포르 국가대표로 출전한 린다 심(68) 수녀가 “얍” 하며 주먹을 뻗고, “하” 하면서 힘차게 발차기를 했다. 태권도복을 입은 수녀는 성직자가 아닌 영락없이 도장을 호령하는 선수의 모습이었다.

심 수녀는 이번 대회 65세 이상 여자 개인품새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다. 지난 2011년 블라디보스토크 세계태권도품새대회에 처음 출전한 이후로 전 대회 개근 참가자다. 심 수녀는 “주위에서 ‘수녀가 무슨 태권도냐’고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며 “태권도는 육체를 건전하게 해 기도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했다. 그는 “수녀복을 입으면 성직자로 생활하고 도복을 입으면 태권도 선수로 경쟁한다”고 했다.

심 수녀가 태권도를 처음 접한 건 17세 때다. 싱가포르 군인이나 경찰이 되고 싶었지만, 여성인 데다 왜소하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하느님의 군대’인 수녀를 택했죠. 수녀가 되겠다고 하자 부모님 반대가 심했어요. 그때 마음을 다잡게 한 것이 태권도였습니다.” 그는 “태권도를 배워 자신을 지키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생각에서 도장을 찾았다”며 “가라테, 태권도, 우슈 도장이 있었지만 가장 예술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태권도의 매력에 빠졌다”고 했다. 그는 결국 부모를 설득해 25세에 수녀가 됐고, 프란치스코 선교회 소속으로 런던에서 17년,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3년 봉사 활동을 했다.

2004년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해외 봉사 활동을 접고 귀국했다. 싱가포르 아시시 호스피스 아동병동에서 일하며 환자들을 돌보는 동시에 태권도를 지도했고, 2011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린다 심 수녀의 태권도 이력은 바티칸 교황청에까지 알려졌다. 그는 2018년 세계태권도연맹(WT) 시범단과 바티칸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했다. 이 자리에서 심 수녀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용기 있는 수녀’라고 칭찬했다”고 말했다.

린다 심 수녀는 이번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하루 2~3시간 맹훈련을 했다. 그는 “이번 세계대회를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물러나려고 한다”며 “싱가포르 선수 중 제가 최연장자이고, 가장 어린 선수는 13세”라며 웃었다. 다만 그는 “70세 이상 대회가 생긴다면 계속 참가할 생각도 있다”고 했다.

린다 심 수녀는 “태권도의 겨루기가 아닌 품새는 상대에게 해를 입히지 않고 자신을 단련하며 묵묵히 가는 예수님의 길과 같다”고 했다. 그가 태권도를 놓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린다 심 수녀는 “세계태권도연맹의 모토 ‘원 월드 원 태권도’처럼 태권도를 통해 지구촌이 한 가족 하나의 정신으로 화합했으면 한다”고 했다. 지난 2018년 대만 세계태권도품새대회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린다 심 수녀는 오는 23일 개인 품새에 출전해 금메달을 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