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미국 하와이의 커뮤니티 칼리지(지역단위 대학)에 등록한 늦깎이 유학생 김완선은 교양 수업으로 유화(油畵)를 선택했다. 10대 중반 데뷔해 노래와 춤, 방송활동 외에 해 본 일이 거의 없던 그였지만, 생전 처음 접하는 그림의 세계에 빠르게 몰입했다. ‘화가 김완선’의 첫걸음이었다. 14년 뒤인 2022년 여름, 그는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갤러리 필랩의 개관기념 특별전에 초대됐다. 앞서 지난달에는 울산국제아트페어에도 초대됐다.
1986년 댄스곡 ‘오늘 밤’으로 대중음악계에 샛별처럼 등장한 지 36년 만에 화가로 사실상 두 번째 데뷔를 한 셈이다. 차분한 단색 색조의 김완선 그림은 전시회에서 주목받았고 상당수가 팔렸다. 24일 전화로 만난 김완선은 “좋은 취미가 생겼으니 열심히 그리자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한 마음”이라고 했다. “하와이에서 그림 배울 때만 해도 한국 돌아가면 열심히 그리자고 마음먹었는데, 활동이 바쁘니 이어가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런 그에게 기회를 준 건 불청객 코로나였다. 일이 줄어들고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레 놓았던 그림을 다시 하게 됐다. 왜 뒤늦게 붓을 들었을까. 김완선은 “그림은 나에 대한 치유”라고 했다.
“저는 직업 전선에 너무 일찍 뛰어들었어요. 자아가 완성되기도 전에 일을 시작한 거죠. 돌아보면 굉장히 힘들었어요. 제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말하자면 일만 하는 어린아이인 채 나이만 먹고 살았던 거죠.” ‘한국의 마돈나’로 불리며 1980~1990년대 최고의 스타로 군림하는 중에도 그는 종종 “내가 없어질 것 같은 불안감과 공포감에 빠졌다”고 했다. ‘내가 대체 누군지 알아가고 싶다’ ‘이제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나이가 들면서 강렬해졌다. 그의 그림 대부분이 자화상인 것도 이런 까닭이다. “자화상 그리는 것 자체가 힐링의 과정이에요. 마음이 편안해지고 치유가 되고, 힘들었던 어린 시절을 위로하는 것 같고, 잃어버렸던 것을 보상받는 거죠.”
10대 데뷔해 국내 가요계를 평정한 뒤 외국으로 활동 무대를 넓힌 김완선의 행보는 지금 K팝 아이돌의 모범 답안처럼 됐다. K팝의 위상이 30년 전에도 지금 같았다면 오히려 마돈나가 ‘미국의 김완선’ 소리를 들었을 거라는 농담도 나온다. 까마득한 후배 걸그룹 가수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부럽고 자랑스럽죠. 저 때는 시스템 자체가 안정적이지 않았고 많이 불완전해 이것저것 힘든 게 많았거든요. 지금은 굉장히 안정돼 있고, 이 친구들이 자기 관리도 잘하잖아요.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들어요. ‘나는 왜 저렇게 못했을까.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하하.”
1980~1990년대 레트로 열풍이 큰 트렌드가 되면서 김완선 노래들도 ‘소환’되고 있다.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아이유)’, ‘기분좋은 날(어반자카파)’ 등 많은 후배 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리메이크했다. “한동안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 부모님이 팬이었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요즘은 ‘예전 음악부터 찾아 듣는 팬’이라는 얘기도 많이 듣고 있다”고 했다. 해마다 꾸준히 싱글 음원도 발표해온 그의 목표는 음악과 그림 어느 하나 소홀함 없이 해나가는 것이다. “음악은 많은 이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이 있다면, 그림은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혼자 해나가는 매력이 있죠. 이 중에 어느 하나만 고를 순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