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에서 수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도 참상을 카메라에 담았던 영국 사진작가 팀 페이지(78)가 작고했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페이지가 지난 24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사인은 간 질환과 췌장암이었다.

페이지는 20살이었던 1965년부터 약 4년간 베트남에서 오토바이와 헬기를 타고 참혹한 현장을 찾아다녔다. 4차례나 생사를 오갔지만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1969년에는 부상한 미군을 구하기 위해 같이 따라나선 병사가 지뢰를 밟으면서 5㎝짜리 파편이 페이지 오른쪽 눈 위를 뚫고 뇌까지 들어간 일도 있었다. 그는 이 상황에서도 카메라 렌즈를 바꿔 사진 몇 장을 찍고 나서야 헬기 안에서 쓰러졌다. 이후 야전병원에 도착해 플라스틱을 두개골에 삽입하는 수술을 받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의 사진들은 미국 사진 잡지 ‘라이프’와 미 주간지 ‘타임’, 프랑스 ‘파리마치’ 등 매체에 실렸다. 페이지는 2013년 한 인터뷰에서 “내 사진이 베트남전을 멈춘 건 아니지만 여론을 흔드는 역할을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페이지는 사고 이후 미국에서 회복에 전념하다가 1980년대 초 10년 만에 다시 베트남을 찾았다. 이후 동남아에서 목숨을 잃은 언론인을 추모하고자 작품 활동에 매진했다. 1991년에는 21년 전 캄보디아에서 붙잡혀 현지 무장단체 ‘크메르루주’에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동료 사진작가 숀 플린과 다나 스톤의 실종 과정을 추적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고, 1997년에는 베트남전 사진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AP통신의 호르스트 파스와 손잡고 인도차이나 지역에서 사망한 사진작가 135명의 작품을 담은 도서 ‘레퀴엠’을 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