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는 러시아인 중 가장 재산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유리 밀너(61) 디지털스카이테크놀로지(DST) 최고경영자(CEO)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며 시민권을 포기했다.

밀너는 10일(현지 시각) 트위터를 통해 “나와 내 가족은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2014년에 러시아를 영원히 떠났다”며 “지난여름 우리는 러시아 시민권을 포기하는 절차를 공식적으로 끝마쳤다”고 밝혔다.

DST글로벌 역시 같은 날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밀너는 지난 8월 러시아 시민권을 공식적으로 포기했다”고 전했다. 또한 DST글로벌은 “밀너는 현재 러시아에 어떤 자산도 없고 그의 개인 자산 중 97%는 러시아 밖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밀너는 블라디미르 푸틴을 개인적으로나 단체로나 만난 적이 없다”고도 덧붙였다.

1961년 소련(현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아버지와 러시아계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밀너는 모스크바주립대에서 이론 물리학을 전공한 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 입학했다. 최초의 소련 출신 미국 유학생이었다. 2009년 벤처투자사인 DST글로벌을 창업한 뒤로는 페이스북, 트위터, 알리바바, 징둥닷컴 등 빅테크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큰돈을 벌어들였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 기준 밀너의 개인 재산은 약 35억달러(약 5조 200억원)에 달한다.

밀너의 러시아 시민권 포기 결정은 그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크렘린궁과 거리를 둬온 행보의 연장선으로 분석된다. DST글로벌은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이를 ‘주권 국가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전쟁’으로 규정하는 규탄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밀너가 세운 비영리단체인 ‘브레이크스루 프라이즈 재단(Breakthrough Prize Foundation)’ 또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민간인에 대한 부당하고 잔혹한 공격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DST글로벌은 러시아와의 연관성을 부인하면서 거리를 두고 있다. 이 회사는 2011년 러시아 국영은행과 후원자들로부터 자금을 받아 미국 기업에 투자한 혐의로 조사받은 바 있다. 이에 관해 DST글로벌은 “설립 이후 올해까지 모은 총자본의 3% 미만만이 러시아 기관(VTB Bank)으로부터 조달된 돈”이라며 “이는 모두 2014년까지 완전히 반환됐다”고 해명했다. 밀너 또한 지난 3월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우리에게 러시아 자금이 있었다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면서도 “2011년 이후 러시아로부터 돈을 받은 적도, 러시아에 투자한 적도 없다”고 했다.

1999년 이스라엘 시민권을 취득한 밀너는 홈페이지에 본인을 ‘이스라엘 투자자’로 소개하고 있다. 포브스 또한 2020년 4월 억만장자 목록에서 밀너를 러시아에서 이스라엘로 재분류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실리콘밸리에 1억달러를 지불하고 집을 샀으며 2014년엔 온 가족이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현재 밀너의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 전체가 이곳에서 거주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밀너는 기업가들에게 인기 있고 ‘비범한 능력’을 가진 이들에게만 부여되는 미국의 O-1 비자를 보유한 상태”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