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릿빛 얼굴, 날카로운 눈매, 입가에서 턱밑까지 수북한 수염. 한국인들이 떠올리는 ‘이슬람 성직자’의 첫 인상이다. 유수프 에스테스(78)는 그 통념부터 깨뜨리는 인물이다. 흰 피부에 푸른 눈빛을 한 그의 얼굴은 영락없이 백인 할아버지다. 길게 늘어뜨린 흰 수염은 곧 활동을 시작할 산타 클로스의 그것과 빼닮았다. 그래서 이슬람식 모자와 성직자 옷을 입은 그의 모습이 다소 비현실적인 느낌도 안겨준다. 미국 보수의 심장, 텍사스 출신인데다 30년전까지 열혈 기독교인으로 살다가 개종한 뒤 영미권 이슬람 선교 방송(가이드유에스TV)를 이끌고 있는 ‘무슬림 셀럽’이다. 아마도 무하마드 알리 이후 가장 유명한 미국인 개종 무슬림일 것이다. 그가 한국이슬람교 초청으로 한국을 처음 찾았다.
서울 용산구 한국이슬람교 중앙성원에서 개최된’이슬람 문화의 날(22일)’ 행사의 주빈으로 행사 개최 테이프를 끊었고, 21~23일 사흘 동안 특강을 했다. 첫날엔 한국 종교 지도자 등을 대상으로 ‘종교간 대화와 비무슬림의 이슬람 세계에 대한 오해’, 이튿날엔 한국 사회에서 소수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토종 무슬림을 위해 ‘이슬람에서의 가족의 가치와 자녀 교육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다음날에는 한국 거주 외국 무슬림들에게 교리 등을 강연했다. 이른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 토벌에 앞장서온 국가인 미국에서 온 ‘무슬림 셀럽’의 강연을 들으러 몰려든 이들로 고요한 모스크가 모처럼 북새통을 이뤘다. 한국이슬람교의 주선으로 기자와 만난 그에게 종교를 바꾸게 된 이력부터, 부르카와 히잡, 이슬람국가와 외로운 늑대까지 거침없이 질문을 던졌고, 그는 물러나거나 피하지 않고, 대답을 이어갔다. 두 종교의 경전에 정통한 그는 대답할때마다 성경과 꾸란의 구절을 다소 장황할 정도로 세세하게 인용했고, “Because I’m Texan(나는 텍사스인이니까)”라는 영어와 “알 함 두릴라(신을 찬미합니다)”라는 아랍어 구절을 주기적으로 곁들였다.
-아주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는데 어떻게 무슬림으로 개종했나.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의 사업 파트너로 이집트인을 알게 됐다. 무슬림이라길래 거부감부터 느꼈다. 당시 내 머리 속 무슬림은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사막에 떨어진 블랙박스(메카의 카바신전)를 믿으며 땅바닥에 다섯번씩 절하는 못생기고 나쁜 사람들이었다.”
-만나러 가면서 겁도 잔뜩 들었을텐데.
“그래서 성경과 십자가, 성구(聖句)말씀까지 품고 만나러 나갔다. 그런데 터번도 수염도 없는 대머리 사내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겸손하고 온화한 사람이었다. 그래도 그를 기독교로 개종시켜야한다고 생각했다. 마침 아는 천주교 신부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내가 예상한 것과 전혀 다른 상황으로 흘러갔다.”
-전혀 다른 상황이라 하면?
“그 신부님이 이집트인보고 ‘당신네 모스크에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 다녀온 뒤 무슬림이 된 것이다. 나는 모스크는 동물을 도살하고 폭탄을 제조하는 곳이라고 여겨왔다. 혼란스럽고 두려웠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 이집트인과 이야기를 했다. 차분한 표정으로 “이건 당신이 신과 해야 할 이야기”라고 말하고 뒤돌아가더라. 혼란스럽던 마음이 차분해지고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신이여. 나를 이끌어주소서”였다. 꾸란의 첫 구절이다. 그렇게 무슬림이 된 게 1991년 7월 15일이었다.”
-어떻게 보면 갑작스러운 개종인데, 가정 생활에 문제는 없었나?
“개종을 결심한 뒤 아내에게 “무슬림 남편이랑 함께 살면 어떨 것 같느냐”고 물었다. 교리에 따르면 무슬림 남성은 기독교 아내와 살 수 있다고 하더라. 그 반대의 경우는 불가능하지만. 아내는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헤어지고 아내는 떠났다. 슬하 두 딸은 우여곡절 끝에 내가 키우게 됐고, 재혼으로 맞은 아내가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가정을 돌봤다.”
-미국은 기독교 국가라는 인상이 강하다. 개종이 미국인으로서의 당신의 정체성을 바꿔놓았나.
“전혀.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텍산(Texan·텍사스인)이다. 텍산을 쉽게 믿어선 안된다. 하하.”
(멕시코의 일부였던 텍사스는 치열한 전쟁 끝에 독립국이 됐고, 이후 미 연방에 가입했다. 주의 별칭도 역사적 독자성을 강조한 ‘외로운 별(Lone Star)’이다. 한국정부와의 법적 분쟁 때문에 익숙한 이름이 된 사모펀드 론스타도 본사가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텍사스 주민들은 자신들이 미국인이기에 앞서 텍사스인이라는 취지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런 말이 무색하게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키우는 뉴스들이 많다. 극단주의 단체들의 테러, 히잡을 강요하는 이란, 여성들에게 부르카를 씌우고 사회생활을 막아버린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인질을 잔인하게 참수하는 이슬람국가(IS)의 테러까지. 왜 이런 뉴스들이 끊이지 않는건가.
“꾸란에 이런 말이 있다. ‘라 이끄라하 피딘’. 굉장히 중요한 구절인데 누굴 강압적으로 압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슬람의 행동방식에 강압이란 없다. 그건 칼을 들어 억지로 개종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꾸란에는 ‘칼’을 뜻하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종교를 권장할 때도 무슬림이 되면 이런 혜택과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알리는 것이지 무력을 동원해서 강제 개종시키지 않는다. 우리가 맞서 싸워온 상대는 무슬림의 종교생활을 막는 이들이었다. 용서하고 공격하지 않으면 심판의 날에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게 이슬람의 가르침이다.”
-강요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남성의 턱수염이나 여성의 히잡·부르카 등을 분명히 강제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지 않나.
“이슬람의 근본적인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한다. 신께서 그대에게 뭘 기대하시는지, 그분이 모든 것을 관장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걸 이해한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내 머리칼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만일 햇볕 알러지 등 여러 문제가 있다면 히잡을 써야겠지? 남자의 수염도 똑같다. 이슬람은 수염을 기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떤 남성은 수염이 거의 나지 않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또 수염을 깎으면 어떻게 되나. 죽이기라도 하나?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이슬람의 이름으로’ 또는 ‘이슬람의 계율을 지킨다’며 무엇인가를 강제하거나 남의 목숨을 빼앗는 사람들은 이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남의 목숨을 빼앗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술을 마시거나, 이런 안좋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 또한 누군가 어떤 행위 등을 강요한다면 그는 절대로 무슬림이 아니다. ‘나는 무슬림이다’라고 쓰인 종이 여러 장을 이마에 붙여도 지옥에 갈 수 있다. 한번도 생전에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이라도 천국에 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나 온몸을 가리거나 수염을 기르라고 강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 않나. 그걸 이슬람 원리주의라고도 말하고.
“이슬람 원리주의라는 건 없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용어다. ‘이슬람’이라는 단어에 최소 일곱가지 용어가 내포돼있다. 신께 복종하라. 신을 섬기라. 하늘에서 하듯 땅에서도 행하라. 신께서 원하시는 행동을 하라. 이것이 제일 어려운 것인데 신께 100퍼센트 진심이어야 한다. 여기에 안전·보안·평화 이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어떻게 테러리즘과 어울리는가. 원리주의는 이슬람에 맞지 않는 영어식 표현이다.”
-결국 이슬람이라는 단어가 잘못 이해되면서 안좋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인데, 당신은 전세계 무슬림이 주목하는 이른바’이슬람 세계’의 셀럽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도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개종 첫날부터 지금까지 책임감을 느낀다. 나도 무슬림이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무슬림의 삶을 시작했다. 내 마음속도 편견으로 가득했었다. 내면도 모르면서 겉으로만 판단하려 했다. 나에게 종교란 이런 것이다. 가령 내 가게에서 어떤 여자손님이 물건을 잔뜩 산 뒤 아주 작은 잔돈을 남겨두고 갔다. 나는 텍사스 모자를 쓴 채 그 손님 뒤를 한참을 달려간다. 기절할 것만큼 지친 상황에서 잔돈을 돌려주니 손님이 되묻는다. 아니 왜 이런 생고생을 하시냐고. 그 생고생이 바로 나의 종교이다.”
-당신은 기독교를 믿다 무슬림이 됐다. 당신에게 신을 믿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신이 있을까. 의구심을 가진 적은 없나. 신은 한 분인가. 당신이 신께 뭘 해달라고 이야기하는 편인가. 아니면 반대로 신께서 당신에게 뭔가를 해달라고 이야기하나. 이런 질문에 사람들은 신은 있다고 말하거나 혹은 없다고 말할 것이다. 괜찮다. 또 어떤 사람은 모른다고 할 것이다. 혹은 로마 사람들처럼 이곳저곳에 신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신은 영원해야 한다. 우리는 무덤에 가서야 깨닫는다. 모든 것이 시험일 뿐이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