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장은 1일 서울 성북구 본원에서 “빌게이츠 재단처럼 치매나 기후 등 세계적 문제를 다루는 재단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2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직원들이 ‘연봉 1% 기부 운동’을 시작했다. 당시 KIST에서는 국민들의 삶과 더 밀접한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정부의 지원금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성격을 뛰어넘어 보자는 것이었다. 당시 문길주 원장 등 KIST 내부에서 “KIST가 KIST답게 해보자”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많은 혜택을 받은 만큼 이제는 베풀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왔다. 연봉에서 일정 부분을 떼서 기부하자는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일었고, 수년간 자발적으로 기부에 참여한 직원들은 60%에 달했다.

15억원이라는 돈이 쌓였다. 처음엔 “국가가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는 정출연에 왜 독자적인 재단이 필요하느냐”며 재단 설립을 허가하지 않던 정부도 KIST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조금씩 마음을 돌렸다. 그렇게 올해 3월 국내 최초의 정부출연연구기관 공익 법인재단인 ‘KIST 미래재단’이 탄생했다.

1일 서울 성북구 KIST 본원에서 만난 윤석진(63) KIST 원장은 “대학의 발전재단은 대개 대학 건물을 짓고 자기 대학만을 위한 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KIST만의 미래나 발전이 아닌 국가 과학기술의 발전과 국민을 위한 공익적 목적에 치중하고자 했다”며 “그래서 일부러 발전재단이 아닌 미래재단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KIST는 미래재단 기금으로 자폐 치료 연구에 우선 투자하고 있다. 윤 원장은 “전 세계 자폐아 비율이 2%인데 우리나라는 그 비율이 4%나 되고 자폐 아동에 대한 지원도 미비하다”며 “전 세계적으로 치매 연구를 20년 가까이 진행한 끝에 치료제가 나왔듯 자폐 연구도 지금부터 시작해야 10년, 20년 뒤에라도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봤다”고 했다. KIST 미래재단은 자폐 연구에 더해 시각장애 연구, 치매 연구, 노화 방지 연구 등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미래재단은 난치병 치료 등 사회적 난제 해결을 넘어 장학 사업, 그리고 국격 제고를 위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도 설계 중이다. 특히 장학 사업에 대해 윤 원장은 “단순히 학생들에게 돈을 주는 것을 넘어 탈북민,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을 초청해 인공지능(AI)을 비롯한 첨단 과학기술을 체험하게 해주고 우리 연구원들이 직접 재능 기부를 해주는 방식의 새로운 장학 사업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의 빌게이츠 재단이 치매 문제나 기후 재난 등 세계적인 문제를 다루는 것처럼 KIST 미래재단도 국가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앞서 다뤄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