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짜장) 맛이 최고야! 가끔 태워먹으면 아이들이 ‘영양가 없다’고 귀신같이 알아채거든”(김진환 학지사 대표)
‘탁탁탁 탁탁탁’. 28일 오전 9시 30분 경기 양평군 이미란발효학교의 40평 남짓한 체험실. 다양한 연령대의 남녀 여섯 명이 짜장 소스에 들어갈 감자, 단호박, 양파, 당근을 썰어대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체험실 옆 조리실에선 앞치마를 두른 남성 세 명이 춘장을 볶고 있었다. 이들은 중견기업 CEO들로 구성된 짜장면 봉사단 ‘독수리형제들’과 그 자녀들이다.
독수리형제들은 매달 넷째주 수요일에 모여 양평의 장애인복지시설 ‘로뎀의집’ 장애인들을 위해 짜장면을 만드는 봉사 모임이다. 서울대 ABKI(문헌지식정보 최고위과정) 동문들로 구성됐다. 2012년 이미란(59) MI3 대표의 “골프보다 더 재밌는 걸 알려주겠다”는 제안에 조성식(72) 포스코에너지 전 대표, 김진환(65) 학지사 대표, 최창옥(65) 프라임엔터프라이즈 대표, 이성(61) 한음사 대표 등이 함께 나서면서 시작됐다. 이후 매달 꾸준히 이어져 올해로 10주년이 됐다.
‘독수리형제들’이란 이름은 “짜장면 봉사 같은 작은 마음 하나가 세상을 구하는 시작이자 실천”이라는 이미란 대표의 생각에 따라 붙여진 이름이다. 왜 ‘짜장면’이냐는 물음에 이 대표는 “짜장면을 좋아하는 중증장애인 친구가 많은데 외진 산속에 있는 ‘로뎀의집’에는 대량의 짜장면 배달이 어렵다고 해 우리가 만들어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생 거의 요리를 해본 적 없는 CEO들이 짜장면을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파를 깎다 눈물 콧물을 쏙 빼고 서투른 칼질에 손가락이 베이는 일도 허다했다. 그럼에도 다섯 원년 멤버는 짜장면 봉사에 거의 빠지는 일 없이 개근했다. 김진환 대표는 “참 맑고 순수한 (중증장애인) 친구들이 짜장면을 맛있게, 많이 먹으려고 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뿌듯한 일이 또 없다”며 “앞으로 전국에 수많은 ‘독수리형제들’이 나타나 봉사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요리 연구가 백종원을 닮은 탓에 얼떨결에 주방장을 맡게 됐다는 이성 대표는 “중간중간 그만둘까 싶던 때도 있었지만 10년을 해보니 이젠 베테랑이 됐다”며 “돈보다도 더 값진 봉사라는 소중한 자산을 자식에게 꼭 대물림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달 23일 10주년을 맞은 독수리형제들은 이날 ‘봉사의 세습’이라는 특별한 행사를 마련했다. 짜장면 봉사를 다음 세대로 이어나가기 위해 자녀들을 현장에 초대한 것이다. 아버지인 김 대표를 따라 처음 짜장면 봉사에 참여한 김주훈(24)씨는 “오늘을 계기로 꼭 이곳이 아니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미란 대표의 막내아들 김비사(16)군은 “6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봉사를 다녔다”며 “커서 정치인이 돼 사회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둘째 딸 김해(34)씨는 “단 몇 시간을 고생해 수많은 아이를 기쁘게 만든다는 것은 정말 값진 일”이라며 “부모님과 함께 봉사의 즐거움을 느끼며 살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