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타임스(NYT)의 토머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70) 오피니언 칼럼니스트는 한국 식자(識者)들에게도 알려진 유명(有名) 인사입니다. 유대계 미국인인 그는 2020년 12월 1일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 당선자와 전화로 1시간 정도 통화했습니다. 대(對)중국 정책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눈 그는 다음날 NYT 오피니언면 자기 칼럼을 통해 전화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토머스 프리드먼 미국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유대계 미국인으로 1953년 7월 생이다./NYT제공

◇다섯 측면 독특한 세계적 언론인

이처럼 세계적 영향력을 지닌 토머스 프리드먼은 다섯가지 측면에서 독특합니다. 먼저 1953년 생인 그는 요즘도 매주 1회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수 년 전만 해도 그의 칼럼 게재 주기는 주 2회(수·일요일자)였습니다. 1978년부터 언론계에 줄곧 몸담고 있는 그는 30세부터 49세까지 19년 동안 3차례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언론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퓰리처상의 3회 수상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뭅니다. 언론계에서 딱 한 번 1981년 NYT로 옮긴 그는 1995년 1월부터는 외교(foreign affairs) 담당 칼럼니스트를 맡고 있습니다.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주요 저서들/thomasfriedman.com

두번째로 그는 7권의 베스트셀러 저자(著者)입니다. 1989년 낸 그의 첫 번째 저작인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From Beirut to Jerusalem)>는 미국내 12개월 연속 베스트셀러가 돼 최소 25개국에서 번역됐습니다. 지금도 미국 고교·대학의 중동학(中東學·Middle East Studies) 교재로 쓰입니다.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2005년)>는 37개국 언어로 변역돼 400만부 이상 팔렸고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The Lexus and the Oliver Tree·1999년)>는 27개국에서 번역된 세계화(globalization)에 관한 명저(名著)입니다. 이런 깊이있는 저작물로 그는 미국을 넘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저널리스트가 됐습니다.

세번째는 언론인 가운데 세계 최고 수준의 연봉과 강연료입니다. 그의 공개 강연료는 한 회당 평균 4만달러(약 5000만원)를 웃돕니다. 외국 초청시 항공기 1등석과 5성급(星給) 이상 특급호텔 숙박 제공도 받습니다. 2022년도에 그가 NYT에서 받은 연봉(年俸)은 30만달러(약 4억원)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10대부터 골프와 친숙하게 지낸 골프 팬이자 골프광이다. 2008년 당시 그의 골프 핸디캡은 5였고 2023년 현재 7.1이다. 사진은 중동의 두바이의 골프장에 있는 프리드먼(왼쪽)

네번째로 프리드먼은 미국 현역 언론인 가운데 가장 골프를 좋아하고, 잘 치는 골프광(狂)입니다. 그의 현재 핸디캡은 7.1입니다. 즉 그는 평균 타수 79의 싱글 골퍼입니다.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 외곽의 세인트루이스 파크에서 성장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캐디를 하며 골프를 몸에 익혔습니다.

그는 고교 시절 학교 골프 대표팀 주장(主將)을 맡았고 17세때인 1970년 열린 US오픈 골프대회에선 프로선수 캐디를 했습니다. 워싱턴 DC 외곽 메릴랜드주 베데스다(Bethesda)에 있는 그의 집은 골프장에서 1분 이내 거리에 있습니다. 프리드먼은 2019년 4월 15일자 NYT에 실은 ‘타이거 우즈와 인생 게임(Tiger Woods and the Game of Life)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싱글 골프 실력...300억원대 부자

“골프는 인생과 비슷하다. 울퉁불퉁한 땅에서 경기한다는 게 그렇고, 모든 게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골프의 성공은, 인생과 마찬가지로, 잘 쳤을 때와 못 쳤을 때 어떻게 반응하느랴에 달려있다(So much of success in golf, as in life, is about how you react to those good and bad bounces). 중간에 그만 둬? 골프채를 던져 버려? 슬쩍 속여? 징징거릴까? 캐디 탓을 할까?”

마지막으로 그는 보기드문 부자(富者) 언론인입니다. 상속 재산에다 연봉과 강연료 수입 등으로 프리드먼의 개인 자산은 2021년 7월 현재 2500만달러(약 305억원)에 달한다고 미국 언론은 전합니다. 그의 베데스다 집은 면적 1만1400평방피트(약 1060평)짜리 저택(邸宅)입니다. 그는 부동산·쇼핑몰 등을 소유한 거부(巨富)의 딸인 앤 벅스바움(Ann Bucksbaum)과 1978년 결혼해 장성(長成)한 두 딸을 두고 있습니다.

토머스 프리드먼의 메릴랜드주 베데스타 소재 자택. 면적만 1만1500평방피트에 달하며 골프장과 1분 이내 거리에 있다. 2017년 말 모습/트위터

프리드먼은 이런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기자(記者)로서의 ‘직업 의식,’ ‘프로 정신’에 매우 철저합니다. 2002년 서울에서 그를 만난 고(故)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의 인상기(印象記)입니다.

“그는 나와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하는 내내 랩톱 컴퓨터를 무릎에 올려놓고 자판을 두드리면서 먹고 말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낯설고 무례한 매너라고 할 수 있었지만 이해가 되었다. 아마도 그는 호텔에 돌아가서 칼럼을 써보내야 했을 것이다. <세계는 평평하다>를 쓸 때는 아내와 함께 30분 거리에 있는 식당으로 가면서도 차 안에서 랩톱으로 원고를 쓴 그다. 그에게서 랩톱을 뺏는 것은 윈스턴 처칠에게서 시가를 뺏는 것 이상으로 잔인한 일일 것이다.”

2009년 서울에서 강연하는 토머스 프리드먼 미국 NYT 오피니언칼럼니스트/연합뉴스

2009년 2월 24일 4박5일간 서울을 다시 찾은 프리드먼은 분(分) 단위로 일정을 쪼개 기조연설, 토론·면담·인터뷰 등 10여개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당시 한 언론인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powerful) 칼럼니스트라는 명성을 듣는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그는 “오 마이 갓. 누가 그래요?”(Oh my god. Who called me that?)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철저하게 ‘현장’에 기초한 칼럼

“나는 아침에 일어나 거울 앞에 서서 와우(wow)라고 외치지 않습니다. ‘와우’라고 외치는 순간 나는 사람들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돼요. ‘나 토머스 프리드먼은 올림포스산에서 하계(下界)에 불벼락을 내리는 제우스야.’ 이런 생각을 하면 나는 한국 사정을 취재하기 위해 14시간이나 날아서 한국까지 오지 않게 되지요. 나는 철저히 땅에 발을 딛고 살아요(I stay very grounded). 내 모토는 ‘가지 않으면 모른다’입니다.”

그는 “나에게 파워나 영향력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탄탄한 현장주의에 바탕을 두고 쓴 칼럼에서 나오는 것”이라며 “내 칼럼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아도 좋지만 그 현장에 없었다고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무엇이 좋은 칼럼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2022년 8월2일자 뉴욕타임스에 토머스 프리드먼이 쓴 칼럼의 중국어판.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연방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의 부적절함을 비판하는 내용이다./NYT 제공

“훌륭한 취재와 분석이 통합돼 있으면서 다음 같은 5가지 반응을 받는 게 좋은 칼럼입니다. 첫째 독자가 그걸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는 새로운 정보가 있는 칼럼, 둘째 ‘나는 그렇게 보질 못했어요. 고맙습니다’라는 반응이 있는 칼럼, 셋째 ‘당신은 내가 느끼기는 했지만 표현하지 못한 걸 썼어요’라는 반응, 넷째 ‘당신과 당신 가족을 모조리 죽여버리겠다’는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칼럼, 다섯째 읽는 사람을 울리고 웃기는 칼럼입니다.”

현장 취재를 여러 기자가 같은 조건에서 했더라도, 글쓰는 이의 통찰력과 분석·정리력에 따라 생산되는 글의 품질은 천양지차(天壤之差·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납니다. 그런 측면에서 프리드먼은 정보와 첩보를 분석해 의미를 부여하고, 지식으로 가공해 글이나 책으로 써내는 데 탁월한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은 그가 어떻게 ‘위대한 기자’가 됐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의 전기(傳記)를 보면 결정적인 형성 무대는 고교 시절이었습니다. 프로 골프 선수를 꿈꾸던 그는 10학년(고1) 무렵부터 중동(中東)에 흠뻑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1968~69년 성탄절 휴가 때 부모와 함께 당시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방문한 게 분수령이었습니다. 그는 여름방학 때 이스라엘 키부츠(kibbutz·집단 농장)에 가서 생활했고 미네소타대 입학 후 브랜다이스대학으로 옮겨서도 아랍어와 히브리어 공부 등에 집중했습니다.

예루살렘의 히브리(Hebrew)대학과 카이로 소재 아메리칸대학에 교환학생으로도 공부한 프리드먼은 1975년 중동을 포함한 지중해(地中海) 지역학을 전공해 최우등(summa cum laude)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토머스 프리드먼의 30대 모습. 그는 나이들어 보이려 19세부터 콧수염을 길렀다. 2000년대 초반 그가 콧수염을 깎자, 가족들이 반대해 계속 콧수염을 기르고 있다. 콧수염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조선일보DB

◇고 1때부터 ‘중동’과 ‘언론’에 열정

마샬 장학생(Marshall Scholarship)에 선발돼 영국 옥스퍼드대 세인트 안토니 칼리지(St. Antony’s College) 석사과정에 입학해 중동학을 2년 더 공부했습니다. “자신감으로 충만했고 무엇을 원하고 어디로 가야할 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단연 돋보이는 학생이었다”고 지인(知人)들은 당시의 그를 회고합니다.

프리드먼은 고교 시절부터 저널리즘에 대한 열정(熱情)도 키웠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뉴욕타임스(NYT) 칼럼을 읽으면서 정치·세계 정세에 관심을 가졌는데, 해티 스타인버그(Hattie Steinberg)라는 저널리즘 담당 교사를 만난 게 행운이었습니다. 그녀는 취재와 신문제작의 즐거움과 흥미를 안겨주면서 프리드먼을 훈육(訓育)시킨 주인공입니다.

프리드먼은 “스타인버그 여사는 내가 만난 가장 엄격한 선생님이었다. 10학년때 우리는 <메아리(The Echo)>라는 교지를 발간했다. 11학년이 되면서 선생님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나는 기자가 못 되고 영업사원 일을 하다가 나중에 기자가 됐다”고 했습니다.

옥스퍼드대 대학원을 마칠 무렵 그는 이미 12개의 칼럼을 써서 미국·영국 신문에 게재할 만큼 필력(筆力)을 인정받았고 UPI통신사의 런던지국 소속 기자(記者)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뉴욕타임스 홈페이지에 실린 토머스 프리드먼 소개 내용. 2023년 1월 기준/NYT 제공

그의 초년 기자 시절 전력투구(全力投球)는 지금도 회자됩니다. 당시 중요 뉴스였던 야간 화재 사건을 도맡아 열심히 취재했을 뿐 더러 거의 매일 코피(bloody noses)를 쏟을 정도로 24시간 긴장하며 취재와 취재원 관리, 정해진 마감 시간 안에 기사 쓰기 같은 기자 생활의 기본을 익혔다고 합니다.

이런 철저한 준비와 혹독한 단련을 바탕으로 입사 1년 만인 1979년 레바논 지국으로 발령받은 프리드먼은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이 발군(拔群)의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그에게서 베이루트특파원·예루살렘지국장 자리는 고교 1학년 시절부터 다져온 준비의 절정(絕頂·culmination)이자 확인 무대였습니다. 그의 눈부신 활약을 눈여겨본 NYT는 2년 만인 1981년 그를 스카웃했습니다. 프리드먼은 연이어 언론계 입문 도합 5년 만인 1983년, 30세 나이에 퓰리처상을 받아 자신의 진가(眞價)를 증명해 냈습니다.

NYT 외교담당 칼럼니스트로서 프리드먼의 첫번째 기명 칼럼. 1995년 1월1일자에 실렸다./NYT제공

◇6차원 렌즈로 세계를 분석·해설

그의 성장에는 NYT의 배려도 큰 몫했습니다. 1989년 프리드먼이 첫 저서를 낼 수 있도록 회사는 1년의 저술 휴가(Book Leave)를 허락했습니다. 또 1989년에는 워싱턴지국에서 국무부를 맡는 수석 외교담당 기자로 발탁했고 1992년 백악관 취재팀장(chief white house correspondent)→1994년 워싱턴지국 경제담당 수석기자을 거쳐 1995년 외교담당 칼럼니스트로 경력을 관리해 줬습니다.

덕분에 프리드먼은 정치·문화·국가안보·금융 및 통상·기술·환경 등 ‘6차원(6-dimension) 렌즈’로 세계를 관찰·분석·해설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능한 기자나 칼럼니스트는 이 6가지의 시각과 렌즈를 적절하게 조합하고 추출해내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늦어서 고마워(Thank you for being late)>의 한국어판 번역자인 장경덕 매일경제신문 논설실장과의 2017년 대담(對談)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토머스 프리드먼의 최신 저서 <늦어서 고마워>. 장경덕 매일경제신문 논설실장의 번역으로 2017년 나온 한국어 판이다./인터넷 캡처

“언론계에 들어오는 이들에게는 저마다 다른 동기(動機)가 있다. 그중에는 탐사 보도를 하는 기자, 특정 분야를 전담하는 기자, 속보(速報) 뉴스를 다루는 기자도 있고 해설(解說)을 주로 하는 기자도 있다. 내 경우에는 언제나 후자(後者)가 되기를 열망했다.

나는 영어를 영어로 옮기기를 좋아해서 언론계에 들어왔고 복잡한 주제를 선택해 분해하는 걸 좋아한다. 내가 먼저 그 주제를 이해한 다음 다른 이들에게 설명한다. 세계가 갈수록 더 복잡하게 얽히고 있는 오늘날, 이런 일종의 번역 작업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항상 이민자(移民者)처럼 생각하고 갈망하라”

프리드먼은 “나는 주로 워싱턴D.C.의 NYT 사무실 근처에서 아침 먹을 시간에 정기적으로 친구들을 만나고 공직자나 분석가, 외교관들을 인터뷰한다. 혼자 아침을 먹으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더 많이 배우며 하루를 채우려는 내 나름의 일하는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2008년 12월 20일자 조선일보 토요일자 주말섹션 Weekly BIZ 커버 스토리로 실린 토머스 프리드먼 기사/조선일보DB

그는 21세기 한국 독자들에게 네 가지 조언을 했습니다.

“먼저 낯선 땅에서 기회를 찾는 이민자(移民者)처럼 생각하고 갈망(渴望)하라. 둘째로 항상 장인(匠人)처럼 생각하고 자신이 하는 일에 특별한 자부심을 가져라. 그리고 언제나 PQ+CQ>IQ 부등식(不等式)을 기억하라. 만약 높은 열정지수(PQ·passion quotient)와 호기심지수(CQ·curiosity quotient)를 가진 젊은이를 내가 만난다면, 나는 높은 지능지수(IQ)를 가진 사람 대신 그를 선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기업가(企業家)적으로 생각하라. 회사에서 당신의 일이나 역할이 무엇이든 끊임없이 기업가적으로 사고하고, 언제나 기존 분야에서 갈라져 나와 새로운 분야의 사업을 시작할 길을 찾아라.”

미국 CBS방송에 출연한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CBS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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