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현지 시각) 규모 7.8의 강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치며 수만명의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지진 발생 나흘 뒤 만화 일러스트레이터 명민호(30) 작가의 소셜미디어에 두 장의 그림이 공개됐다. 한국전쟁 당시 폐허가 된 마을에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물과 초콜릿을 건네주는 튀르키예 군인과 현재 폐허가 된 튀르키예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아이에게 물을 먹여주고 있는 우리나라 긴급구조대원이 각 그림의 주인공이었다. 명 작가는 이 그림들과 함께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와 같은 피해를 보고 있는 시리아에 깊은 애도를 그림으로나마 전한다”며 “마음만큼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본다”고 게시물을 올렸다.

한국과 튀르키예의 약 70년 우정을 담은 이 두 장의 그림은 양국에서 “역시 형제의 나라”라는 반응과 함께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명 작가의 그림을 소개한 한 튀르키예 현지 매체의 트위터 글은 13일 오후 기준 조회수 320만, ‘좋아요’ 수 16만 이상을 기록할 정도였다.

튀르키예와 70년 형제애… 이번엔 우리가 손길 내밀어 - 한국전쟁 당시 폐허가 된 마을에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고사리손에 초콜릿을 쥐여준 튀르키예 군인(왼쪽)과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현재 강진이 덮친 튀르키예에서 흙투성이가 된 아이에게 물을 먹이는 대한민국 긴급구조대의 모습. 만화 일러스트레이터 명민호 작가가 지난 1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그림이다. 튀르키예 일간지 휘리엣은 “많은 튀르키예인들이 이 그림에 눈물을 흘리며 고마움을 표했다”고 전했다. 한 튀르키예 채널이 이 그림을 소개한 트위터 글은 조회수 319만, ‘좋아요’ 수가 16만 이상을 기록했다. 명 작가는 “한국전쟁 당시 많은 도움을 준 튀르키예 국민에게 우리는 그때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명민호 작가 인스타그램

13일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한 명 작가는 “11일 주한 튀르키예대사관에서 ‘당신 덕에 많은 튀르키예인이 힘을 얻고 있다’고 연락이 오는 등 현지에서도 많은 감사 인사를 받고 있다”며 “그저 애도하는 마음으로 그린 그림인데 이렇게 반응이 뜨거워 쑥스럽다”고 했다. 또한 그는 “내 그림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 보다 많은 분들이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관심을 갖고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기적과 행운이 찾아오길 바란다”고도 했다.

만화 일러스트레이터 명민호 작가가 13일 오후 충남 아산시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그가 튀르키예에 관한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다름이 아닌 죽은 어린 딸의 손을 놓지 못하는 튀르키예인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였다. 명 작가는 “생사가 엇갈린 부녀의 사진을 보고 마음이 정말 무거워졌다”며 “그로부터 얼마 후 튀르키예에서 최선을 다해 구조 활동을 펼치는 우리 구조대원분들의 활약을 접하고 그분들과 튀르키예 현지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을 주고자 그림을 그리게 됐다”고 했다. 그림에서 튀르키예 군인과 한국 구조대원이 각각 현지의 어린아이에게 물을 주는 장면을 그린 것에 대해서 그는 “순수한 어린아이가 피해를 보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고 나라면 저 상황에서 목이 가장 마를 것 같아 그 장면을 그렸다”며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우리는 함께 하고 있다는 메시지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명 작가는 튀르키예와 한국의 우정을 계속해서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학창 시절 역사 시간에 6·25전쟁을 배우며 튀르키예가 한국에 큰 도움을 준 형제의 나라라는 인식이 있었다”며 “전쟁 당시 유엔군으로 참전한 한 튀르키예 군인 슐레이만과 그가 친딸처럼 보살펴준 아일라(김은자씨)의 사연도 과거에 뉴스에서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가 소개한 이 사연은 영화 ‘아일라’로 제작돼 튀르키예와 한국 양국에서 2017년과 2018년 각각 개봉하기도 했다. 10여년전 있었던 한 튀르키예인 노동자와의 인연도 그가 튀르키예를 더 각별히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됐다. 2012년 군에 입대하기 전 막노동을 하던 그는 고국에 세 아이를 둔 28세의 튀르키예 청년과 함께 일했다. 명 작가는 “당시 머나먼 한국까지 와서 차별을 받으며 고생하면서도 일도 묵묵히 잘하고 ‘우리는 형제’라고 말한 그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했다.

만화 일러스트레이터 명민호 작가가 13일 오후 충남 아산시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명 작가는 2015년부터 인스타그램 등에 다양한 일상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9년차 작가로 2020년부터 2022년까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클로징 일러스트를 맡았고 지난해 12월에는 그간 그린 그림들을 엮은 에세이 ‘빛나는 것을 모아 너에게 줄게’를 출간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2012년 웹툰 및 만화 전문 대학교에 합격했음에도 입학을 포기한 그는 “그림을 독학으로 배워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고 겸손함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6·25 참전용사를 비롯해 군인, 소방관, 환경미화원 등을 그린 그림들이 유독 눈에 띈다. 이에 대해 그는 “개인적으로 존경과 대우를 받아야 마땅한 직종이라 생각한다”며 “많은 사람이 제 그림을 보고 한 번쯤 이분들에 대해 되돌아보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그는 “지금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지만 아직 만화가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며 “남 모르게 본인의 일을 하시는 청소부 아주머니처럼 평범하지만 누군가에겐 소중하고, 또 기억돼야 할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