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1일 저녁 서울 강남구 한국문화의 집 코우스 공연장에 아리랑이 울러퍼졌다. 장사익(74)과 일본 전통음악인 오쿠라 쇼노스케(68), 요코자와 가즈야(61), 현대무용가 가가야 사나에(50)가 다른 연주자들과 무대 위에서 합창했다. 250여 객석을 채운 관객들도 같이 ‘떼창’했다. 두 시간 동안 이어진 공연의 피날레였다.
이날 공연에선 해금(강은일)과 트럼펫(최선배) 등 한국 뮤지션의 연주에, 스즈미(장구 비슷한 타악기)와 후에(둥글게 생긴 피리) 등 일본 전통 악기들이 선보였고, 덩실덩실 한국식 어깨춤과 나붓나붓한 부토(舞踏·일본 현대무용) 춤사위도 어우러졌다. 2005년부터 매년 3월 첫날 펼쳐진 장면이다. 일제강점기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기리는 날이라 더욱 눈길이 가는 한일 합동 공연이다.
장사익은 설명이 필요 없는 ‘국민 소리꾼’이다. 일본 문화청 지정 유산대사(우리의 인간문화재에 해당)로 전통극 노(能)의 보존과 전승을 책임지고 있는 오쿠라를 비롯해 일본 음악인들도 각자 영역에서 자기 입지를 굳혔다. 이들을 한데 묶어준 인연의 중심에 한국의 전설적 타악 연주자 김대환(1933~2004)이 있다. 고인은 팝·클래식·국악·월드뮤직 등 음악 간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활동하면서 장사익 같은 재야의 고수들도 발굴했고, 일본 문화 전면 개방 전부터 양국 음악인 교류에 앞장섰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후배 음악인들이 장사익을 중심으로 의기투합하면서 연례 추모 공연으로 이어졌다. 고인의 기일이 하필 3월 첫날이다 보니 자연스레 ‘삼일절 한일 뮤지션 합동 공연’이 됐다. 가가야는 “김대환 선생님이 하늘에서 일본 고유의 음악과 춤을 아리랑 선율에 보태는 장면을 지켜볼 생각을 하니 기쁘다. 말은 안 통해도 음악은 모든 걸 연결해주는 힘이 있다”고 했다.
이날 공연은 코로나로 3년 만에 재개된 만큼 더욱 뜻깊었다. 코로나 봉쇄로 합동 공연이 성사되지 못했던 지난 2년간 일본 음악인들은 도쿄에서 자체 추모 공연을 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전날 입국한 이들은 막걸리와 된장찌개 등이 차려진 저녁 자리로 회포를 풀고, 공연 당일 아침 장사익의 집에 모여 차와 과일로 해장을 하고, 북한산 자락을 보며 합을 맞췄다.
장사익은 “한일 관계 때문에 그간 조심스럽고 조마조마했던 상황도 없지 않았지만, 우리 공연은 내년에도, 내후년, 그 이후에도 계속된다”고 했다. “일본 전통 옷에 전통 악기로 공연하고 한국 관객들이 뜨겁게 박수 치고, 함께 아리랑을 부르잖아요.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장사익의 말에 일본 음악인들도 화답했다. 오쿠라는 “인류는 음악을 통해 발산하고, 미래를 만들어간다”며 “음악인들이 음악을 놓지 않고, 놓아서도 안 되는 이유”라고 했다. 요코자와는 두 나라의 관계를 악기의 연주에 비유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움직임도 소리도 나지 않지만, 서로 마찰하고 맞닿으면서 아름다운 소리와 리듬을 만들어낸다. 우리처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