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이상각 신부가 남양성모성지 대성당에서 줄리아노 반지의 성화를 배경으로 서있는 모습. 모금으로 건립 비용을 조성하다 보니 성당 의자가 아직 플라스틱 의자였다. /이태경 기자

“순교자들이 처형된 이곳에 예술과 문화를 꽃피우는 것이 소명이라 생각했습니다. 끝을 앞두고 있습니다. 세계적 건축가와 예술가들이 함께했죠.”

지난 20일 경기 화성시 남양읍에 있는 천주교 남양성모성지 대성당. 30년 넘게 성지를 담당한 이상각(65) 신부가 대성당 창으로 바깥을 내려다봤다. 앞쪽으로 부속 건물과 조경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곳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수많은 천주교 신자가 처형된 슬픔이 서린 곳. 몇 개월 만에도 건물이 지어지는 시대에 이 대성당은 건립에 30년 넘게 걸렸다. 단순히 크고 위용 있는 성당이 아니라, 이곳을 찾는 누구에게나 ‘울림과 치유의 공간’이 되도록 만들고 싶다는 이 신부의 꿈 때문. “원래 논밖에 없는 허허벌판이었어요. 인프라가 없던 이 지역에 문화·예술 공간으로도 기능할 수 있는 건물들을 짓고 싶었습니다.”

비용은 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모금과 대출금으로 마련했다. 천주교 신자인 건축계 거장 마리오 보타와 페터 춤토어, ‘21세기 미켈란젤로’로 불리는 예술가 줄리아노 반지 등이 순교지에 성당을 짓겠다는 그의 뜻에 공감해 ‘최소 보수’ 수준만 받고 참여했고, 성지는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만약 계획대로 남은 공사가 진행되면 내년 중 성지 조성이 마무리될 것”이라면서도 “아픈 손가락이 있다”고 했다. 보타가 설계한 대성당은 마무리 작업만 남았고, 반지의 예수상과 성화는 대성당에 걸렸다. 하지만 춤토어가 2014년부터 작업해 작년 7월 설계를 마친 ‘티 채플’ 건물이 시공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티 채플은 방문자들이 차를 마시며 명상할 수 있는 100평 정도의 공간이다.

‘건축가들이 존경하는 건축가’로 불리며 상업적 건축과 선을 긋는 춤토어 건축물은 세계 10여 곳에 불과해 희소성이 있고, 티 채플은 아시아의 첫 춤토어 건축물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었다. 이 신부는 “춤토어가 ‘모든 인간이 환대받을 수 있는 공간, 동양의 오랜 문화인 차를 끓여 마시는 공간이라면 맡겠다’고 해 진행됐던 건물”이라며 “종교적 색채가 없어 신자들의 돈을 쓸 수 없고, 기대를 걸었던 정부 지원도 어려워 건립이 어려운 상태”라고 했다.

쉽게 설계를 맡지 않는 춤토어도 이 건물에 애정이 컸다. 세 차례 방문해 수시간 동안 홀로 성지를 돌아다니며 건물이 들어서기에 알맞은 곳을 찾았다. 설계 9년 차에 “이제야 이 건물을 알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공사가 지연되자 이달 초 이 신부에게 메일을 보내 ‘나는 진심으로 이 소박하고 단순하며 아름다운 건축물을 실현할 수 있길 바란다’며 안타까워했다.

이 신부는 “춤토어의 건축물이 한국에 지어진다면 큰 문화적 가치를 지닐 텐데도 천주교 신부가 한다니까 종교 건물로 치부해 충분히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춤토어 건물을 언제 볼 수 있는지 오는 사람마다 많은 관심을 보이지만 돕는 사람이 없어 참여가 아쉽기도 합니다. 신부는 70세가 정년인데 그 전에 춤토어의 건물을 볼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