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기대 가설’로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루커스 시카고대 명예교수(85)가 지난 15일(현지 시각) 세상을 떠났다. 노벨상 수상 당시 노벨위원회는 루커스에 대해 “1970년 이후 거시경제학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경제학자”라고 평가했었다.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명예교수. /시카고대

조선소 근로자였던 아버지와 패션 디자이너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1937년 태어난 루커스는 ‘시장주의 경제학’의 성지로 불리는 시카고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카네기멜런대 교수를 거쳐 1975년부터 모교인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다.

루커스가 1970년대 초부터 주장했던 ‘합리적 기대 가설’은 소비자와 기업이 합리적으로 앞을 내다보고 행동한다는 얘기다. 예컨대 정부가 실업을 줄이기 위해서 돈을 풀어서 경기를 부양하면, 소비자들은 돈이 풀리면 미래에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나타날 걸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물가가 오르면 정부가 다시 긴축에 나설 것까지 소비자들은 내다보기 때문에 돈 푸는 정책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란 결론에 이르게 된다.

지금 들으면 당연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1970년대 초로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면 루커스의 주장은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경제학계를 풍미하던 이론은 ‘케인스주의’였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1883~1946)는 불황 때 정부가 돈을 풀어서 경기를 살릴 수 있고 실업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케인스의 주장은 정부 개입이 없어도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해 경제가 잘 굴러간다는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1723~1790)의 ‘고전주의 경제학’에 대한 반론이었다. 그런데 1970년대 오일쇼크로 불황이 닥쳤을 때 정부가 돈을 풀었더니 경기가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닥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나면서 케인스주의는 궁지에 몰렸다. 이렇게 코너에 몰린 케인스주의에 마지막 일격을 가한 게 루커스의 ‘합리적 기대 가설’이었다.

로버트 루커스 시카고대 명예교수가 지난 15일 세상을 떠났다. 루커스 교수는 개인과 기업이 합리적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에 정부 개입 정책의 효과가 없다는 주장으로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조선일보DB

하지만 거의 모든 ‘혁명적’ 이론이 그렇듯이 루커스의 ‘합리적 기대 가설’은 처음에 학계에서 선뜻 인정받지 못했다. 1972년 전미경제학회가 발간하는 미국 최고 경제학술지인 AER(American Economic Review, 미국경제리뷰)는 그의 논문 게재를 거절했다. 그래서 당시엔 이름이 없던 ‘경제이론저널(Journal of Economic Theory)’이라는 학술지에 실렸다. AER에서 루커스의 논문을 퇴짜 놨던 조지 볼츠 브라운대 교수는 “경제학 논문에 수학이 너무 많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루커스의 논문은 점차 주목받게 됐고 거시경제학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꿔 놨다. 시카고대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정부 개입보다는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시장 활동을 강조하는 ‘시장주의 경제학’이 부활의 목소리를 높이게 됐다. 반대편에 서 있던 케인스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에 개인들의 합리적인 기대가 있다면 어떻게 경제가 움직이는지 연구하는 식으로 루커스의 주장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루커스의 이론은 ‘정책이 바뀌면 그에 따라 사람들의 기대도 바뀌기 때문에 기존에 가정한 경제 변수의 관계도 바뀌게 된다’는 ‘루커스 비판’으로 나아가게 된다. 경제가 살아 있는 동물처럼 움직이니 ‘모든 게 그대로다’라고 가정하고 이론을 전개하는 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경제학 연구에서 수학적 엄밀성을 요구하는 경향도 짙어지게 됐다.

실제 정책에도 루커스 이론이 반영되고 있다. 미국 연준은 금리를 결정할 때 소비자들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중요한 지표 중 하나로 꼽고 있으며, 점차 기업과 개인의 기대에 영향을 주는 정책을 중시하고 있다.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안내)’라고 해서 언제 금리를 올릴지 미리 알려주는 식이다.

그렇지만 ‘합리적 기대 가설’도 완벽한 이론은 아니다. 모든 사람이 합리적으로 예측한다면 ‘경제 위기’는 있을 수 없겠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와 같은 혼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글로벌 위기 때 “그간 경제학은 (이론의) 아름다움을 진실로 착각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루커스 교수는 이런 비판에 대해 “현실을 모두 반영한 경제학 모델은 불가능하며, 단순화가 불가피하다”고 반박했었다.

루커스 교수는 노벨 경제학상 상금(100만달러)의 절반을 이혼한 부인에게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처는 1989년 이혼하면서 이혼 서류에 1996년 이전에 노벨상을 받으면 상금 절반을 위자료로 받는다는 조항을 넣었고, 실제 상금의 절반을 받았다. 이룰 두고 전처가 합리적 기대 가설을 루커스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