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대표작 ‘엑소시스트’(1973) 포스터. 악령이 들린 열두 살 소녀를 구하려는 신부의 처절한 사투를 통해 선과 악의 본질을 파헤친 걸작이다. /IMDB

공포영화의 걸작 ‘엑소시스트’(1973)를 연출한 윌리엄 프리드킨(87) 감독이 7일(현지 시각) 별세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프리드킨 감독이 이날 로스앤젤레스(LA) 인근 벨에어 자택에서 심장 이상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작가 윌리엄 피터 블래티(1928~2017)가 쓴 동명 소설(1971)이 원작인 영화 ‘엑소시스트’(출연 막스 폰쉬도브·린다 블레어)는 악령에 사로잡힌 열두 살 소녀가 몸을 거꾸로 비틀어 거미처럼 계단을 내려온 뒤 피를 내쏟는 장면과 십자가로 자위하는 장면 등으로 발표 당시부터 엄청난 충격과 화제를 모았다. 악마가 인물 각자 마음속의 약한 고리를 공격하면서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해 공포에 깊이를 부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4년 제4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여우주연상 등 10부문 후보에 올라 음향상과 각색상을 받았다. 공포영화가 작품상 후보에 오른 것은 ‘엑소시스트’가 최초였다.

영화가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출연 배우와 제작진이 저주를 받아 잇따라 숨졌다’는 ‘엑소시스트 괴담’도 떠돌았다. 특히 ‘엑소시스트’에 영화감독 역으로 나왔던 배우 잭 맥고런(1918~1973)이 촬영 몇 달 뒤 실제로 사망하면서 소문이 확산됐다. 그러나 실제 사인은 인플루엔자였다는 점이 이후 밝혀지는 등 대부분 뜬소문으로 확인됐다.

리엄 프리드킨 감독.

그는 여러 감독의 존경을 받는 ‘감독 중 감독’이었다. 스탠리 큐브릭, 기예르모 델 토로 등은 ‘엑소시스트’를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꼽았으며 박찬욱 감독은 ‘엑소시스트’를 5번이나 봤다고 밝혔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크리스토퍼 매쿼리 감독은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추모글을 올리고 “윌리엄 프리드킨은 이야기꾼이자 말썽꾸러기였으며,신사이자 거인이었다”며 “많은 이가 앞으로도 그를 모방할 것이나 누구도 따라잡지 못할 것”이라고 썼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프렌치 커넥션’(1971, 출연 진 해크먼·로이 슈나이더)은 형사 수사물 장르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찬사를 받으며 1972년 제44회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 5부문을 휩쓸었다.

프리드킨은 ‘프렌치 커넥션’과 ‘엑소시스트’가 잇따라 흥행하며 30대 중반에 일찌감치 경력의 정점에 올랐지만, 이후에는 이를 뛰어넘는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2000),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 에피소드 2편(2007, 2009)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최근 제작을 마친 영화 ‘케인호의 반란’(출연 키퍼 서덜랜드·제이슨 클라크)은 오는 30일 개막하는 베네치아영화제에서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