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선 할 수 없지만 함께하면 무언가 해낼 수 있다는 것, 그게 스카우트 정신이에요.”
‘2023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를 위해 스웨덴에서 한국을 찾은 줄리아 엘메스터(16)양은 지난 열흘가량의 잼버리 대회에서 스카우트만의 협력 정신을 느꼈다고 했다. 여덟 살부터 스카우트를 시작해 가족·친구들과 종종 하이킹을 하는 등 스카우트 활동이 익숙한 그에게도, 이번 잼버리는 남달랐다고 했다. 국적도, 피부색도 다른 사람들을 만나,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는 스카우트 정신을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엘메스터양이 속한 스웨덴 스카우트 ‘36번 유닛(스웨덴 내 36번째 팀)’은 지난 7일 인스타그램에 한 영상을 올리며 화제가 됐다. 앞서 5일 영국 대표단이 새만금 야영장에서 조기 철수하자, 이들을 추억하는 ‘장례식 퍼포먼스’를 찍어 올린 것이다. 줄리아와 유닛 대원들은 나뭇가지를 십자가 모양으로 엮은 뒤, 영국 국기와 함께 팻말을 꽂아 기념비를 만들었다. 팻말에는 “우리의 이웃 영국 대표단을 잊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들이 경례를 하며 영국 국가 ‘갓 세이브 더 킹(God Save the King)’을 부른 영상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들은 야영장의 슬픈 분위기를 극복하고자 영상을 만들었다고 했다. 당시 영국과 미국 대표단의 철수가 결정되자, 어느 국가 대원 할 것 없이 침울했다고 한다. 다른 국가들의 도미노 철수가 우려됐지만 1500명이 참가한 스웨덴 스카우트는 잔류를 선언했다. 스웨덴 스카우트는 “스웨덴 젊은이들에게 잼버리는 독특한 경험이자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경험”이라며 “참여를 중단하는 것은 젊은이들에게서 그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스웨덴 스카우트 유닛 리더 알곳 아터바그(22)씨는 “철수 소식에 혼란스러웠지만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로 이겨내는 게 스카우트 정신”이라며 “일종의 ‘블랙 코미디’ 같은 영상을 통해 사람들에게 웃음을 되찾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스웨덴 스카우트 대원들은 잼버리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겨내는 과정이 뜻깊었다고 했다. 엘메스터양과 함께 영상을 만들었다는 알바 아넬(16)양은 “새만금에서 첫날에는 샤워실 환경도 열악하고 텐트 안이 덥고 습해 힘들었다”며 “하지만 다음 날부터 대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같이 청소도 하고 더워하는 친구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서로 나눠주는 등 힘을 합쳤던 일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들은 함께한 인연을 잊지 않고 소중히 간직하기 위해 징표를 서로에게 남겼다고 한다. 엘메스터양과 아넬양은 영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 대원들과 각자 아끼는 소지품을 교환했다고 한다. 엘메스터양은 자신의 목에 걸고 있던 스카프와 배지를 보여주며 “스위스 대원이 붉은색 스카프를 주고 영국 친구는 꽃 모양 배지를 줬다고 했다”고 했다.
스웨덴에서는 스카우트 정신을 생활 속에서 배운다고 한다. 스카우트 정신이 일종의 문화처럼 퍼져 있기 때문이다. 아넬양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代)가 스카우트 집안이다. 아넬양의 부모와 조부모도 스카우트 캠프에서 만나 결혼을 했다고 한다. 아넬양은 “또래 친구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로 함께 야영을 하거나 등산을 하는 등 스카우트 활동을 함께 즐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지난 8일 태풍으로 새만금에서 철수하고, 충남 천안의 한 대학 기숙사로 숙소를 옮긴 엘메스터양은 “워터파크에 갔는데 한국인들이 휴가를 보내는 모습이 독특했다”고 했다. 스웨덴에서는 학교 체육 시간에 수영을 배우기 때문에 수영장에서 구명조끼를 입지 않는데, 한국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엘메스터양은 “야영장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사소하지만 큰 차이를 경험했다”며 “함께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름을 경험하며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엘메스터양은 “2주 동안 어려움이 많았지만 함께 힘을 합쳤던 우리 모두가 스카우트 정신을 실천했다”며 “무사히 잼버리를 마칠 수 있도록 도와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