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나더러 바보라고 합디다. 그래도 어려운 사람은 도와야지요.”
화재로 공장이 불에 탄 경쟁 업체에 무상으로 자기 공장을 빌려주며 재기를 도운 기업인이 있다. 경북 칠곡군 왜관산업단지에 있는 자동차 스포일러(차체가 뜨는 현상을 막기 위한 부착물) 제조 업체 대일기업 대표 박병태(65)씨가 주인공이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지난 1일 “지역 사회에 상생의 정신을 전해준 박 대표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며 그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박씨는 지난 2021년 8월 칠곡군 북삼읍에서 화재가 발생해 자동차 부품 제조 업체인 A사 공장이 몽땅 타버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A사도 박씨 회사처럼 스포일러 제품을 현대차에 납품하는 회사였다. 업계에서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경쟁사로서는 호재 아니냐”라는 말도 들려왔다.
그러나 박씨는 A사 측에 “우리 공장을 빌려줄 테니 밤에 와서 일을 하라”고 제안했다. 그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남의 불행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면서 “당연히 도와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회사 직원들은 반발했다고 한다. 경쟁 업체에 설비를 무상으로 빌려주는 일도 꺼림칙하고, 생산된 제품이나 장비를 둘 공간도 좁아 업무에 지장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씨는 자기 공장이 가동하지 않는 저녁 시간에 A사 직원들이 들어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공장을 비워줬다. 야간에 전기료만 받고 자신의 공장과 생산라인을 통째로 내준 것이다. 박씨는 “납기일을 지키지 못하면 신용도가 추락하고, 타 업체에 주문을 뺏겨 회사 생존이 위협받는다”며 “A사도 10년 넘게 일궈온 기업인데,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 4개월 동안 낮에는 박씨의 공장, 밤에는 A사의 공장으로 ‘한 지붕 두 가족’ 생활을 했다. 초기엔 생산 제품과 기자재가 뒤엉키고, 제품을 놓아둘 공간이 부족해져 직원들 간 불편도 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회사 직원들 사이에선 서로 돕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한다. 그해 말 A사는 새로운 설비를 갖춘 새 공장을 차려 떠났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선행은 선행으로 이어졌다. A사가 재기한 직후인 2021년 12월 칠곡군 지천면에 있던 또다른 경쟁업체 B사에서 불이 났다. 이번에는 박씨의 도움을 받았던 A사가 박씨가 했던 것처럼 B사에 공장을 무상으로 빌려줬다고 한다. 결국 B사도 재기에 성공해 세 회사는 모두 지역 자동차 부품 산업을 이끌어가고 있다.
경북 영덕 출신인 박씨는 공과대학을 졸업한 뒤, 전공을 살려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사업 초기 TV 케이스 등을 만들다가 1990년대 들면서 스포일러 제작에 뛰어들었다. 1999년 대구에서 대일기업을 창업해 이듬해 왜관산업단지로 들어왔고, 현재 연매출 130억원을 올리는 회사로 키웠다. 현대·기아차에 납품하고 있고, 도요타 미국 공장에도 수출한다.
박씨는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는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함께 살던 증조부께선 과거 한센병 환자들을 집으로 불러 밥을 먹일 만큼 이웃을 아꼈다”면서 “직원들은 ‘두 번은 빌려주지 말자’고 하지만 또 그런 일이 생기면 또 돕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