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 시각) 스마트 변기 연구로 ‘이그 노벨상’ 공중보건 부문을 수상한 박승민 스탠퍼드대 의대 비뇨기의학과 박사가 스탠퍼드대에 전시돼 있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스마트 변기 위에 앉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 박사의 수상 소감 영상의 한 장면으로, 그는 “이그 노벨상이 이 조각을 옆으로 눕힌 ‘냄새나는 사람’을 로고로 삼고 있는 점에 착안했다”고 밝혔다. /박승민 박사

지난 11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 있는 스탠퍼드대 연구실 문을 열자, 하얀색 비데가 설치돼 있는 변기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옆 테이블에는 복잡한 전선, 소변의 상태를 체크할 수 있는 시험지가 가득한 통 같은 부품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지난 2016년부터 7년 넘게 ‘스마트 변기’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박승민 스탠퍼드대 의대 비뇨기의학과 박사의 연구실이다.

건강한 대소변 상태를 점검하는 스마트 변기에 대한 박 박사의 연구는 올해 ‘노벨상’을 수상했다. 다만 이는 스웨덴 한림원이 선정하는 진짜 노벨상이 아닌, 황당하고 웃기지만 과학적 의미가 있는 연구에 수여하는 ‘이그 노벨(Ig Nobel)상’이다. 박 박사의 연구가 우스운 겉모습 뒤에 진지하고 유의미한 과학적 고민이 있다는 점을 인정받은 셈이다.

이그 노벨상을 주최하는 미국 하버드대의 ‘있을 법하지 않은 연구 연보(Annals of Improbable Research)’지는 15일 온라인으로 33회 시상식을 열고 문학·커뮤니케이션·수학 등 분야에서 총 10명의 수상자를 공개했다. 박 박사는 공중보건 부문 수상자가 됐다. 이그 노벨상은 진짜 노벨상 수상자들이 시상자로 나서는데, 박 박사는 2021년 노벨 의학상을 받은 미국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의 아뎀 파타푸티언 박사에게 상을 받았다. 그는 이날 스탠퍼드 교내에 있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 앞에서 미리 녹화한 수상 소감을 통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개발도상국 화장실을 청결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데, 화장실은 그 이상으로 헬스케어에 기여할 수 있다”며 “당신의 배설물(waste)을 낭비(waste)하지 말라”고 말했다.

박 박사는 2020년 ‘네이처 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에 질병 진단용 스마트 변기를 발표하며 주목을 받았다. 변기에 내장된 카메라로 배설물을 찍고 분석해 10여 종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병원에서도 배변 상태를 체크할 만큼 중요한 건강 지표지만, 환자의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하는 게 대부분”이라며 “스마트 변기를 사용하면 사람이 추가적인 기록이나 확인할 필요 없이 자동으로 배설물 상태가 데이터로 정리된다”고 했다. 질병의 조기 발견은 물론, 병원에서도 정확한 기록을 기반으로 진단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본 스마트 변기는 전원을 연결하자 파란색 라이트가 켜지며 작동됐다. 안쪽에는 아래를 향한 카메라가 장착돼 있었다. 변기 상부에 붙어있는 센서가 사람이 변기에 앉은 것을 감지하고, 사람이 일어날 때까지 카메라가 내부 사진을 0.5초 단위로 찍어낸다. 이 사진을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변의 양, 색, 변을 볼 때 소요된 시간 등을 기록하고, 이상을 분석한다. 그는 “물을 내리는 레버에 지문 센서를 장착해 가족 중 누가 일을 봤는지 구분할 수 있는 시스템도 장착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연구에 대해 주변에서도 부정적 반응이 많았다. 박 박사는 “적나라한 배변 사진을 보기 역겨워하는 교수들도 있었고, 카메라가 어딜 찍을지 모른다는 비난도 많았다”며 “카메라가 배변 외에 다른 것은 절대 찍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도 인식이 잘 바뀌지 않는 게 제일 큰 어려움”이라고 했다. 다만 황당해 보이는 연구도 계속 진행할 수 있는 것이 미국의 저력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선 연구 내용을 듣고 아주 쓸모없다고 판단해버리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곳에선 달랐다”고 했다.

스마트 변기 연구를 이어가는 이유에 대해 그는 “병이 들고 치료하는 것보다 평소 건강 상태를 점검해 병을 예방하는 ‘정밀 건강(presicion helath)’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지난 2020년 세상을 떠난 그의 지도교수 산지브 샘 감비어 스탠퍼드대 의대 영상의학과 교수의 지론이다. 그는 “비행기·자동차에 센서를 달아 상태를 모니터하듯, 의료 체계도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쪽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박 박사의 스마트 변기는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박 박사는 “지난 5월 한국에서 ‘카나리아’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했다”라며 “고급 아파트나 요양 시설, 병원 등에 스마트 변기를 납품할 계획”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