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종합과학관에서 2006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무트 홍콩과학기술대 물리학부 교수가 ‘오늘날의 우주론’을 주제로 특강을 끝낸 뒤 기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화여대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줄이면 한두 해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당장은 비용을 절약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발견과 특허가 사라지면 경쟁력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2006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조지 스무트(78) 홍콩과학기술대 물리학부 교수는 25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과학기술 투자의 중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과학기술 투자가 항상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기업이 혁신하지 못해 경영난에 빠지고, 국가가 성장동력을 잃은 뒤에는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최근 국가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린 나라들을 분석해 보면,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투자는 다른 분야에 비해 성과가 아주 높고 (과학은 돈이 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과 달리) 투자회수율도 좋다”고 했다. 스무트 교수는 2008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기초과학 예산이 삭감되자 다른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들과 함께 “차세대 과학자들에 대한 끔찍한 메시지이며 미국의 명성을 훼손하는 결정”이라는 공개 서한을 보내 추가 예산 편성을 이끌어 낸 바 있다.

스무트 교수는 이날 이화여대 종합과학관에서 250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두 시간에 걸쳐 ‘오늘날의 우주론(Cosmology Today)’ 특강을 진행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스웨덴 노벨재단 산하 ‘노벨 프라이즈 아웃리치’가 공동 개최한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 서울 2023′ 행사의 일환이다. 스무트 교수는 이화여대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2008년 이화여대에 설립된 초기우주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맡아 2014년까지 머물렀다.

스무트 교수는 강연에서 중력파와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암흑물질 등 현재 우주 연구의 핵심 분야에 대해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친절하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실제로 그는 인기 드라마 빅뱅이론에 본인 역으로 출연해 연기했고, TED 강연에 나서는 등 과학의 중요성을 대중에 알려온 대표적 커뮤니케이터로 꼽힌다. 스무트 교수는 “과학자는 대중이나 사회와 소통할 때 내가 정답을 알고 있더라도,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면서 “매우 정확하게 최선의 사실을 전달하되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좋은 정보를 제공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과학자가 사회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마지막에 남는 건 내가 한 말이라는 걸 명심하라”고 했다.

스무트 교수는 오늘날의 우주론 확립에 기여한 현대 물리학의 거장이다. 우주 대폭발(빅뱅)에서 38만년이 지난 뒤 뜨거운 전자와 양자의 방해를 뚫고 처음 방출된 빛은 섭씨 3000도에 이르렀다. 이 빛은 138억년에 걸쳐 우주가 팽창하면서 현재 2.7K(0K는 영하 273도)까지 낮아졌다. 스무트 교수는 1998년 발사된 미 항공우주국(NASA)의 코비(COBE·우주배경복사 탐사선) 책임연구원으로 일하며 우주 전체로 퍼져나간 태초의 빛 ‘우주배경복사’가 모두 2.7K로 균일하지 않고 10만분의 1K 정도의 미세한 온도 차이를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스무트 교수는 이 관측 결과를 이용해 우주에서 은하·별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밝혀냈다. 우주 팽창 과정에서 물질이 모여 있는 곳에 중력이 생기면서 다른 곳보다 온도가 낮아지는데, 이곳에서 은하와 별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연구 결과 발표에서 스무트 교수는 “과학자가 우주 탄생의 증거를 찾은 것은 마치 종교인이 신을 직접 본 것과 같은 일”이라고 했다. 이 공로로 스무트 박사는 코비 위성 장치 책임자였던 NASA 존 매더 박사와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스무트 교수는 현재 우주가 아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이 공급을 멈추면서 부족해진 희토류를 대체하는 것 같은 실제적으로 전 세계가 당면한 위기를 해결하는 분야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강연이 끝난 뒤 한 학생이 “성적이 너무 좋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그는 “전문가들이 모인 대규모 팀도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영웅도 위기를 극복하기 때문에 영웅담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