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별세한 강신호(96) 동아쏘시오홀딩스 명예회장. 내과학 박사 출신인 그는 피로해소제 ‘박카스’를 기획해 회사를 업계 매출 1위 제약사로 올려 놓았고, ‘수석문화재단’을 설립해 1900명 이상에게 장학금을 지원했다. /채승우 기자

숙취에 시달리며 빈 속에 만원 버스 타고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챙겨주던 게 박카스였다. 밤에 들어온 남편이 피곤해 보여도 박카스 한 병을 땄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마신 병을 탈탈 털어 남은 몇 방울을 빨아먹었다. ‘30원짜리’ 박카스 한 병은 생업 전선에 뛰어든 한국 아버지들의 소총이었다.

다양한 의약품 개발은 물론 ‘창의성’으로 한국 제약 산업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강신호(姜信浩) 동아쏘시오홀딩스 명예회장이 3일 새벽 숙환으로 별세했다. 96세.

1927년 경북 상주에서 강중희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강 명예회장은 상경해 양정고, 서울대 의대(6회 졸업)와 대학원을 마치고 내과의를 3년간 했다. 부친 강중희(姜重熙·1907~1977)는 일제강점기 약방에서 점원으로 일한 이력을 살려 1932년 서울 중학동에 약국 ‘강중희 상점’을 세웠다. 동아제약의 모태다. 강신호는 의대 교수를 목표로 1956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으로 유학, 1959년 내과학 박사 학위를 땄다. 하지만 1959년 귀국 직후 부친 회사에 상무로 입사했다. “부친 회사에 약사가 두 명밖에 없어 흑자도산이 코앞이었다”고 회고했다.

3일 오전 별세한 강신호 동아쏘시오홀딩스 명예회장. 의사 출신인 강 명예회장은 뛰어난 언어감각으로 동아제약을 업계 1위 업체로 성장시켰다. 사진은 서울대병원에 마련된 빈소. /뉴스1

약품 기획, 생산, 작명, 마케팅까지, ‘박카스’는 강신호식 제약 경영의 표본이었다. “술꾼들 숙취 해소와 영양 보충을 위한 드링크제를 구상하다가 마침 독일에서 본 박카스 석고상 생각이 떠올라 붙여 본 거지. 술의 신은 바로 술을 사랑하는 사람, 즉 술꾼을 보호하는 신이잖아. 술꾼을 보호하는 신, 박카스, 이렇게 된 것이지.”(월간조선 인터뷰) 1961년 알약 박카스, 이듬해 앰플 박카스를 발매했지만 반응이 미지근했다. 일본에서는 1962년 최초로 드링크 타입 피로해소제 ‘리포비탄D’가 시장에 선풍을 일으킨 때였다. 1963년 8월 8일 동아제약도 드링크 타입 ‘박카스D’를 출시했다. 곧바로 인기가 폭발했고, 1967년 동아제약을 ‘매출 1위 제약사’로 끌어올렸다. 2000년대 들어 광동제약 ‘비타 500′에 아성을 내주기까지, 박카스는 오랫동안 한국의 ‘노동 드링크’ ‘수험 드링크’였다. 1963년 이후 누적 생산량 226억병으로 지구 68바퀴를 도는 양이다.

본디 알약이었던 박카스를 마시는 형태로 선보인 ‘박카스D’(왼쪽)와 사카린 성분을 빼고 일반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광고로 인기를 끈 ‘박카스F’.

동아제약이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사는 일반의약품, 일반외품 등의 시장에서 특히 강자였던 것은 시대를 읽는 강신호의 ‘촉’과 한글, 한문은 물론 일어, 영어, 독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에 능한 그의 언어 감각 때문이었다. “감기 조심하세요”라는 말을 유행시킨 피린계 감기약 ‘판피린 F’ “한오백년 사자는데 웬 성화요”라는 노랫말에서 따온 갱년기 보조제 ‘하노백’, 경상도 사투리로 ‘잘 알면서’를 뜻하는 해열진통제 ‘암씨롱’은 물론 동아식품의 탄산 음료 ‘오란씨’(오렌지+비타민C), 사이다 ‘나랑드’(나랑 둘이서)도 그의 작품이다. 스페인어로 ‘전진’을 뜻하는 ‘아반테’라는 이름을 지어 현대차 정몽구 회장에게 선물한 적도 있다고 한다.

2005년 세계 4번째, 국내 처음으로 개발한 발기부전 치료제 ‘자이데나’는 신약 투자부터 작명까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었다. 라틴어 ‘연인의(zygius)+해결사(denodo)’를 합친 단어로, ‘자 이제 되나’ ‘잘 되나’라는 뜻이다. 시장 1위 비아그라를 의식한 강신호가 생전 오피니언 리더들과 악수하면서 약 샘플을 슬며시 쥐여줬다는 일화가 있다. 그룹이 출시한 거의 모든 제품에 그의 아이디어가 깃들었고, 특허청에 등록된 것만 2500여 개쯤 된다.

60, 70년대 산업 역군의 피로회복제 박카스는 이후 수험생의 음료가 됐다. /동아제약

2016년 경영에서 물러날 때까지 여러모로 ‘재기’ 넘치는 인생을 살았지만, 그의 중심에는 치열한 연구 마인드와 기업의 공적 책임감이 있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복제약 생산에 머물던 국내 제약산업을 R&D(연구·개발) 경영으로 이끌었다”고 추도문에 썼다.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1977년 기업 부설 연구소, 1980년 제약업계 최초 전문 연수원을 설립하는 등 R&D에 지속적으로 투자했다. 그 성과가 1991년 나온 아드리아마이신 유도체 항암제 ‘DA-125′. 1994년 국내 최초로 보건복지부에서 임상시험용 의약품으로 승인받으며 국내 제약사의 신약 경쟁에 불을 붙였다. 수퍼 항생제 ‘시벡스트로’, 당뇨병 치료제 ‘슈가논’도 마찬가지다.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로 1994년 동아제약그룹을 ‘동아쏘시오그룹’으로 개명했다. 공동체 정신을 키우기 위해 1998년부터 시작한 ‘동아제약 대학생 국토대장정’은 20회를 넘겼다. ‘수석문화재단’을 설립, 1900명 이상에게 장학금을 지원했고, 평생 교육, 교육 복지도 후원했다. 제약사 대표 최초로 전경련 회장(2004~2007)을 맡았고, 부회장이던 2001년 회원사들이 경상이익 1%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는 ‘전경련 1% 클럽’을 만들었다. 1984년 은탑산업훈장, 1994년 국민훈장 모란장, 2002년 과학기술 분야 최고 훈장인 창조장을 받았다.

2007년 1월 25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전경연 회장단 회의. 오른쪽부터 박삼구 금호 아시아나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허영섭 녹십자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부회장. /조선일보 DB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던 강 명예회장은 20년 전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이런 소원을 말했다. “약(藥) 자는 풀(艸) 밑에 즐거울 락(樂) 자로 만들어져 있어요. 즐거움을 주는 풀이라는 뜻이지. 제약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이 이런 소릴 하면 좀 아이러니하게 들리겠지만, 내 평생 소망은 앞으로 세계적인 치료제와 신약을 많이 개발해서 결국엔 약이 필요 없는 즐거운 세상이 빨리 오도록 공헌하는 거요.” 수십 년간 165㎝에 체중 58㎏이었다.

장례는 동아쏘시오그룹 그룹장으로 치러지며, 유족은 아들 정석·문석·우석, 딸 인경·영록·윤경·호정씨.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5일 오전 6시 30분, 장지는 경북 상주시 이안면 대현리 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