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너희를 기억하고 있다고, 응원하고 있다고. 그것만 알아주면 됩니다.”

홍석보(63) ‘천사모’ 회장(일지학원 이사장)은 20년째 순국 장병·소방관들의 유가족을 돕고 있다. 지난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고(故) 조천형 상사의 딸 조시은(21)씨, 고 한상국 상사의 아내 김한나(49)씨를 2003년부터 후원했다. 홍 회장은 “제2연평해전으로 국가를 위해 여럿이 숨지고 다쳤는데 당시 우리나라는 월드컵으로 축제 분위기였다”며 “아픔이 묻힐까, 유가족이 어떻게 지낼까 걱정이 됐다”고 했다. 조천형 상사의 딸 조씨는 당시 4개월 된 아기였다.

홍 회장 주도로 군인·소방관 유가족을 돕는 ‘대한민국 수호천사 유자녀를 사랑하는 모임(천사모)’이 발족한 건 2010년이었다. 천안함 폭침을 계기로 천사모를 만들자 홍 회장의 지인들이 회원으로 동참했다. 제2연평해전 당시 부상당했던 갑판장 이해영 원사가 천사모 총무를 맡았다.

홍 회장은 “천안함 폭침 당시 한주호 준위를 포함해 47명이 산화했다”며 “유자녀들을 돕고 싶었는데 혼자 힘으로는 힘들겠다 싶어 지인들에게 부탁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천사모는 2010년 공군 정찰기 추락사고, 2011년 해군 헬기 추락 사고, 2019년 독도 소방 헬기 추락 사고 등 작전 수행 중 숨진 장병·소방관의 유자녀에게까지 장학금을 지급했다.

천사모의 이름으로 지난 13년 동안 유자녀 30여 명에게 3억6400만원이 전달됐다. 장학금 지급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았다. 아이가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도왔다. 천사모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에게 매년 100만원, 대학생들에게는 매년 200만원을 지원한다. 내년부터는 대학원생에게 매년 300만원씩 학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홍 회장이 군 자녀 등에 대한 후원을 시작하게 된 건 아버지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께서 육군 대위 시절 베트남전에 4년간 참전했는데 부상을 당해 일시 귀국한 적이 있었다”며 “그 장면이 연평해전 직후 떠올랐다”고 했다. 당시 홍 회장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아버지가 부상당해 김포공항으로 귀국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고 한다. 어머니 손을 잡고 김포공항에 간 홍 회장은 아버지가 타고 온 군 수송기에서 전사자들의 관(棺)이 줄지어 내려오는 장면을 봤다고 했다. 홍 회장은 “아버지가 목발을 짚으며 왼발에 깁스를 하고 나타나 아버지를 향해 손을 흔들며 애타게 불렀었다”며 “우리 아버지 모습에 가슴이 아프면서도 ‘아버지가 숨진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당시에 들었다”고 했다.

지난 10일 경기 화성시 비봉고에서는 천사모의 장학금 전달식이 열렸다. 20년 전부터 홍 회장이 후원해 온 조천형 중사의 딸 조시은씨도 올해 다시 장학금을 받았다. 조씨는 부경대 해군 ROTC에 입단해 해군 장교를 꿈꾸고 있다.

홍 회장은 “그동안 장학금 지급이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이뤄져 지인들에게 기부금 처리도 해주지 못했다”며 “천사모를 재단으로 만들어 이 지원이 끊임없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했다. 홍 회장은 “작은 지원으로 아버지를 나라에 바친 우리 유자녀들이 꿋꿋하게 자라나고 있음에 무한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