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인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때 현지인들이 ‘한국 교수가 인도는 왜 왔느냐’ 묻더군요. 하지만 저희가 인더스 문명 발굴에 참여해 여러 논문도 내면서 이젠 모두 저희 존재를 자연스럽게 여겨요.”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의대 연구실에서 신동훈 서울대 해부학교실 교수가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 교수는 최근 인더스 문명 주민에 대한 체질인류학적 연구 내용을 담은 단행본을 영국에서 출간했다. 신 교수가 품 안에 든 액자가 책의 표지다. /남강호 기자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 연건캠퍼스에서 고대 인도 인더스 문명을 의학적으로 연구한 신동훈(57) 교수를 만났다.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인 그는 “21년 전 옛사람들의 삶이 궁금해 시작했던 연구가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그는 의학도로서 인더스 문명을 ‘체질인류학’적으로 접근했다. 체질인류학이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류의 체질적 특성과 삶의 환경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신 교수는 인더스 문명 주민들의 삶을 체질인류학적 관점으로 해석한 단행본 ‘최근 라키가리에서 발굴된 하라파(인더스) 문명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지난 12일 영국에서 출간했다.

서울대 의대 85학번인 신 교수는 대학원을 졸업한 뒤 신경과학을 연구하다 2002년부터 해부학교실 교수가 됐다. 그는 이때부터 인류의 건강·질병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신 교수는 “의학을 활용해 인류학과 만나는 ‘체질인류학’에 매료됐다”고 했다.

신 교수는 처음엔 국내에서 발굴된 미라 등 유해를 연구했다. 그러다가 학계 발전을 위해 연구 범위를 해외로 넓혀야겠다 생각했고, 2011년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신 교수는 “한국의 체질인류학, 고병리학 연구가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가려면 관련 연구의 핵심인 고대 4대 문명권 연구에 합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고대 문명 연구는 미국, 유럽, 일본 학자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그 빈틈을 노렸다”고 했다. 이 학자들은 상대적으로 인더스 문명에 대한 관심이 덜했다고 한다.

신동훈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가 지난 2016년 인도 서북부 도시 라키가리의 인더스 문명 유적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동훈 교수 제공

신 교수가 이번에 출간한 단행본의 연구 대상 도시인 ‘라키가리’는 인도 서북부 도시로 학술적 중요성이 큰 곳이라고 한다. 라키가리를 집중 연구한 신 교수는 “인더스 문명 사람들은 생각보다 위생과 건강 상태가 양호했고 관절염 외엔 특이한 병을 앓지 않았다”며 “키도 170㎝가량으로 상당히 큰 편”이라고 했다. 인더스 문명 사람들이 노인성 질환인 관절염 외엔 별다른 병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건강 상태가 양호했던 것으로 해석됐다.

그는 5000년 전 고도의 도시 문명을 이룬 인더스 문명이 상하수도 관리에 탁월했던 것도 눈여겨볼 만한 점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중세 유럽이나 동아시아의 발전한 도시들을 봐도 분변이 흘러나가는 하수도와 사람의 식수가 흐르는 상수도를 분리하는 작업이 생각보다 잘 안 됐다”며 “인더스 문명은 전 도시 규모에서 하수도와 상수도를 완벽히 관리하는 등 엄청난 계획도시의 면모를 보였다”고 했다.

신 교수는 인더스 문명을 분석하면서 ‘역사는 선택의 연속’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인류가 농사를 짓고 도시를 만들면 삶의 모든 면이 전반적으로 발달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건강 상태는 떨어진 것으로 조사된다”며 “1970년대 한국도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건강 상태를 다소 포기해 가며 어렵게 사는 분이 많았던 것을 떠올려보라”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인류가 도시 생활을 택한 것은 건강을 다소 포기해 가면서까지 필요한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인 것”이라며 “현대의 인류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건강을 희생하며 도시 문명을 이룬 인류는 안정된 치안과 농산물 대량생산 등의 성과를 이뤘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내가 처음 고대 문명 연구를 시작했을 땐 아무 기반이 없었지만, 지금은 세계적 연구 기반이 많이 다져졌다”며 “연구자들이 국내 연구에 안주하지 말고 세계로 뻗어나갔으면 한다”고 했다.

신 교수의 이번 단행본에는 김용준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연구교수, 홍종하 경희대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등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