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와 군사 쿠데타의 악순환으로 실의에 빠진 태국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요. 그럴 때마다 군사정권을 극복해낸 한국의 사례를 소개하곤 했죠.”
지난 4일부터 방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피타 림짜른랏(43) 태국 전진당 전(前) 대표는 6일 본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피타 전 대표가 이끈 태국 전진당은 지난 5월 태국 총선에서 하원 500석 중 151석을 얻어 원내 1당에 올랐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나 치러진 총리 선출 투표에서 태국 군부 진영과 보수파가 투표를 무산시키면서, 피타 전 대표의 총리 도전은 좌절됐다. 피타 전 대표는 “군부 독재가 끝나기를 바라는 태국 시민들은 민주화와 산업화를 열망하고 있다”며 “군사정권에서 벗어나 1993년에 문민정부를 되찾은 한국의 사례를 보여주면 태국 시민들도 희망을 얻는다”고 했다.
그는 군사정권에서 민주화까지의 과정을 거쳐온 한국의 사례를 보면 태국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탈(脫)군부와 탈독재, 탈중앙화가 태국에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자유가 기반이 되어야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경제도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청년 정치로 신선함 불어 넣어야”
올해 43세인 피타 전 대표는 태국에서 청년 정치의 바람을 불러 일으킨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는 태국 전진당 당원들의 평균 나이가 딱 내 나이가 됐다”며 “65세 이상 당원들은 예전만큼 많지만, 20대 후반 당원이 전체의 20% 가까이 차지할 만큼 젊은 정치인들이 태국 정치에 갖는 관심도 매우 커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4년 뒤 열릴 다음 선거에서는 올해 선거에 참여하지 못했던 약 320만명의 새로운 유권자가 나올 것”이라며 “새로운 유권자들의 요구에 맞는 새로운 정책을 모색하는 것이 다음 (태국) 총선에서 매우 중요한 과제일 것”이라고도 했다.
코로나 이후 세계가 더욱 빠르게 변하면서 청년 정치인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도 했다. 그는 “수많은 환경 문제에 직면하고 있지만, 청년들이 새로운 인식을 만들어야 미래가 바뀔 수 있다”며 “한국·태국 모두 앞으로도 더 많은 청년들이 더 활발하게 정치에 참여해 새로운 아이디어로 신선함을 불어 넣어야 한다. 청년들이 포기하지 않고 정치에 대담하게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65년 한-태국 관계, 긴 마라톤처럼 봐야”
피타 전 대표는 이번 방한을 통해 한국콘텐츠진흥원, YG엔터테인먼트, 크래프톤 등 문화 콘텐츠 기업 관계자를 잇따라 만났다. 이날 그는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창의성도 필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했다. 그는 “전진당 의원들 중에는 전직 댄서와 전직 영화감독처럼 문화계 출신 정치인이 4명이나 있다”며 “정치인이 문화에도 관심을 가진다면 콘텐츠 산업도 창의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술과 소프트파워 발전으로 영향력을 키워온 한국의 여정이 태국에 영감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태국에서도 한국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책을 펴나갈 방법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피타 전 대표는 YG엔터테인먼트 관계자를 만난 자리에서도 한국과 태국 간 문화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그는 “태국에서 K팝의 인기가 높기도 하지만, 가수 블랙핑크 멤버에 태국 사람이 있을 정도로 양국 교류는 활발하다” 며 “향후 한국과 태국이 활발하게 문화적으로 교류할 수 있도록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고도 했다.
피타 전 대표는 이날 오후 7시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정경관에서 열린 ‘태국 민주주의와 한국-태국의 관계’ 강연에서 연사로 나서 한국과 태국의 관계를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일부 태국 여성들이 ‘한국 입국을 거부당했다’며 한국 여행을 보이콧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한국과 태국의 지난 65년 관계를 하나의 긴 마라톤으로 본다면 고무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단기적으로 보면 그 과정에서 이민이나 출입국 이슈가 생길 수도 있다고 본다”며 “이런 문제들을 무시하고 넘어가기보다는, 양국이 테이블에 나와 앉아 서로 논의해야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강연에서 피타 전 대표와 대담을 진행한 신재혁 고려대 아세안센터 교수는 “피타 전 대표는 태국에서 정치적 변화의 중심에 있고, 태국 민주주의를 위한 그의 위대한 도전은 우리에게 큰 영감을 줄 것”이라며 “태국의 민주주의 발전과 한국과의 관계 강화에 큰 의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