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송윤혜

2023년에도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나 하늘의 별이 됐다. 일본의 영화음악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는 올해 1월 신보 발매에 맞춰 본지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콘서트는 이제 힘들지만 집에서 곡을 만들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2014년 인두암에 이어 2021년부터 직장암으로 수술과 항암 치료를 거듭해오던 사카모토는 인터뷰 두 달 후인 3월 별세했다. 매니지먼트사는 “컨디션 좋은 날이면 자택 스튜디오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며 마지막까지 음악과 함께하는 나날이었다”고 전했다. ‘캐논 변주곡’ 신드롬을 일으켰던 피아니스트 조지 윈스턴도 10년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클래식 음악계에선 ‘한국 바이올린의 대모’ 김남윤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가수 이동원과 함께 ‘향수’를 히트시키며 클래식 대중화를 이끈 ‘국민 테너’ 박인수 전 서울대 교수가 유명을 달리했다. 6월 본지 ‘나의 현대사 보물’ 인터뷰에서 50여년 써온 일기를 공개했던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은 10월에 별세했다. 배우 윤정희는 알츠하이머 투병 끝에 프랑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가수 현미는 KTX를 타고 지방 공연을 다녀온 다음 날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회복하지 못했다.

전후 일본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파헤쳐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의 부음은 사망 열흘 후에야 일본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2020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밀란 쿤데라,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원작자인 미국 소설가 코맥 매카시도 올해 세상을 떠난 문인들이다. 국내에서는 사랑을 노래한 시로 한국 사회의 상처를 보듬은 김남조 시인이 세상을 떴다.

기업인들의 부고도 이어졌다. 평생에 걸쳐 재산을 장학 사업에 기부한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은 “인생은 빈손으로 와서, 손에 가득 채운 뒤에, 사회에 돌려주고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는 지론을 실천하고 떠났다. 삼립식품 공동 창업주 김순일 여사, ‘박카스의 아버지’ 강신호 동아쏘시오 명예회장, 국내 최초로 침대 기업을 설립한 안유수 에이스침대 창업주, 리비아 대수로 건설을 성사시킨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 ‘미스터 코란도’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올해 세상을 떴다.

정계 인물 중에선 시진핑 체제 중국의 2인자였던 리커창 전 총리가 퇴임 7개월 만에 심장마비로 숨졌다. 총리직을 세 번 지내며 성추문 등 숱한 스캔들을 일으킨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 냉전 시기 데탕트(긴장 완화)를 이끌어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부인 로절린 카터 여사도 세상을 떠났다.

학계에선 ‘이승만 바로 보기’를 이끈 유영익 전 국사편찬위원장, 식민사관을 극복하고 조선시대를 재평가한 국사학자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의 부고가 전해졌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박사, 윤석열 대통령의 부친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도 별세했다. 체육계에선 1983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4강으로 이끈 박종환 전 감독이 세상을 떴다. 당시 우리 대표팀에 해외 언론이 붙여준 별명 ‘붉은 악령’은 한국 축구 응원단이 ‘붉은 악마’로 불리는 계기가 됐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들도 있었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자승 스님은 칠장사 화재 현장에서 숨졌다. 조계종은 스님이 소신공양(자신의 몸을 태워 부처님 앞에 바치는 것)했다고 밝혔다.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아오던 배우 이선균은 서울 종로구 한 공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외신은 영화 ‘기생충’으로 해외에도 널리 알려진 그의 별세 소식을 긴급히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