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신장 장애로 장기 입원, 통원 치료를 받는 학생들이 교육 사각지대에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저희가 제안한 조례로 이 아이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작년 12월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서울시교육청 건강 장애 학생 교육 지원 조례안’이 통과했다. 병을 앓아 3개월 이상 장기 입원하거나 통원 치료를 받는 ‘건강 장애 학생’들에게 시 차원의 교육 지원을 해주는 내용이 골자다. 조례안의 공식 발의자는 서울시의회 소속 의원들이지만, 최초 제안한 이들은 서울대 학생들이다.
8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우정글로벌사회공헌센터에서 이번 조례를 제안한 병원학교팀장 진민아(24·경제학부)씨를 만났다. 진씨는 “어릴 적부터 봉사에 관심이 많아 학생 봉사를 기획해 보고 싶었는데, 소아암 등 중증 질환을 앓는 아이들이 ‘병원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데 제도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례 제정을 준비하게 됐다”고 했다. 병원 학교는 병을 치료받는 학생들이 학업을 할 수 있게 병원 차원에서 설치한 학교다.
글로벌사회공헌단 병원학교팀 소속 서울대생 16명은 작년 2월부터 9월까지 서울의 한 대형 대학병원 병원 학교를 찾았다. 이곳에서 학생들 대상 교육 활동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조례 제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노혜수(22·농경제사회학부)씨는 “교육 봉사를 하다 보니 교육이 체계적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진민아씨는 “아이들이 질병 때문에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교육 봉사를 시작했다”며 “하지만 아이들이 병원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데 제도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문제의식을 느낀 병원학교팀은 전국 병원에 있는 병원 학교를 조사했다. 국가나 지자체의 체계적 지원 없이 병원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다 보니 운영 방식이 제각각이었다고 한다. 병원 학교 교사는 1~2명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적은 수의 교사가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모든 학생 환자 교육을 담당하는 어려움도 겪고 있었다.
조례 제정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서울시 병원 학교 교사는 교육청에서 파견된 정식 교사가 아니고 각 병원에서 직접 고용했다. 이 때문에 조례가 제정되면 교육청에서 정식 교사가 파견돼 기존 교사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었다. 진씨는 “‘병원 학교 환아 대상으로 활동을 얼마나 해봤다고 조례 운운하느냐’는 말을 듣고 상처받은 팀원들도 있었다”며 “그래도 교육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이 더 안정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의지 아래 똘똘 뭉쳤다”고 했다.
병원학교팀의 법적 자문을 맡은 서울대 공익법률센터의 전정환(37) 변호사는 “병원 학교가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법적 근거가 명확한 기관도 아니다 보니 문제점이나 현황을 파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며 “이번 조례도 하나의 시작점일 뿐 앞으로 정책적 연구가 뒷받침돼야만 사각지대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진씨는 “조례를 제정하자고 서울시의회에 이야기했을 때 ‘중요하지만 놓치고 있던 부분을 잘 포착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은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서울시의회는 이들의 조례 제안 공로를 인정해 작년 9월 의장 표창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