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 18일 생명이 다해버린 우리 아들 강석민의 몸이 생면부지의 8명에게 주어져서 ‘1+1′의 삶으로, 못다 한 삶까지 덧붙여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들의 삶은 8명의 몸을 통해서 계속 이어질 거라 믿습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5호선 지하철 역사(驛舍)에 있는 ‘도너 패밀리(Donor Family·뇌사 장기 기증인 유가족)들의 사랑방’. 지난 2000년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아들을 돌연 떠나보낸 도너 패밀리 회장 강호(69)씨가 이 장소를 지키고 있었다. 목사인 강씨는 직업적으로 수많은 사람의 장례를 치렀다. 돌도 채 지나지 못한 영아에서부터 팔순이 넘은 노인까지, 각양각색 사람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줬다. 그러던 그는 아들의 마지막 길도 자신이 지켜보게 될 줄은 몰랐다. “머리가 좀 아프다”던 아들은 병원에 입원한 뒤 돌연 뇌사 판정을 받았다.
강씨는 “삶이 이렇게도 허망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죽어서 다 없어진 우리 아들의 장기 한 부분이라도 살려서 아들의 삶을 연장하자”며 장기 기증을 결정했다. 강씨 부부는 뇌사 상태였던 아들의 심장·폐·간·췌장·각막 등 9개의 장기를 기증했고, 아들은 8명에게 새 삶을 주고 떠났다.
가족의 장기를 기증한 유족들을 괴롭힌 건 예상치 못한 주변의 비난이었다고 한다. 장기 기증이 ‘망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라는 시선이 있었다. 2013년에 아들을 떠나보낸 도너 패밀리 부회장 장부순(81)씨는 “저는 제 아들이 세상에 좀 더 오래 살기 바라는 마음에서 장기 기증을 했는데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이냐’는 주변의 비난이 더 큰 비수로 다가왔다”고 했다. 2007년 스물여덟 살이던 아들을 떠나보낸 김일만(78)씨는 “‘집안이 어려우니까 돈 받고 장기 넘긴 거 아니냐’는 말이 아이를 잃은 슬픔만큼 컸다”고 한다.
‘도너 패밀리’ 사랑방은 이런 상처에 공감하는 뇌사 장기 기증 유족들이 모여 지난 2018년 만들어졌다. 유가족들은 이곳에 모여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슬픔에 공감하고, 어떻게 슬픔을 이겨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서로 상처를 보듬어 준다고 한다. 이곳에 상주하는 도너 패밀리 강호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우연히 모인 유족들과도 대화한다. 떠나간 자식 자랑을 하거나 주변의 왜곡된 시선에 상처받은 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한다. 유가족들이 찾은 사랑방은 울음바다가 됐다가 또 웃음바다가 된다고 한다. 장부순씨는 “먼저 떠나간 자식 놈이 나쁜 놈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우리끼리 쓸데없는 것을 잘 알면서도 자식 자랑도 한다”며 “떠나간 자식 생각하며 계속 울다가 웃으니, 누가 우리 보면 미친 사람이라고 당황하겠다”고 웃었다.
떠나보낸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서로에게 말하기도 한다. 2016년 고등학교 2학년 딸을 떠나보낸 이선경(52)씨는 “유나가 살아 있을 때 ‘어차피 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니 나는 장기 기증 할 거야’란 말이 기억나 장기 기증을 선택했는데 유나에게 장기 기증을 한 것에 대해서 혹시 원망은 안 했는지, 그런 말도 묻고 싶다”며 “유나가 아마 우리의 결정을 좋아해 주기를, 엄마·아빠 잘했다는 이야기를 꼭 듣고 싶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가족의 삶이 다른 사람의 몸을 통해 이어진다는 믿음으로 슬픔을 이겨낸다고 한다. 장부순씨는 “아들 종훈아, 누군가 널 기억해 주고 너의 일부가 누군가의 몸 안에 있으니 아직 너는 살아 있는 거야”라며 “너는 아직 누군가의 몸에서 살고 있으니까, 너는 행복해야 해”라고 했다. 그는 “엄마도 꼭 행복할 거야. 네가 남겨준 생명들도 행복할 거야”라며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너를 가슴에 두고 하는데, 조금이라도 남에게 베풀고 살면, 너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