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기보배가 14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웃음 짓고 있다. /뉴시스

“우리나라에 기량 좋은 선수들이 많고 거기서 살아남는 걸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양궁 여제 기보배(36)가 14일 선수 생활을 공식적으로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다시 태어나도 양궁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며 남긴 말이다. 그러면서도 “다시 태어나면 양궁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했다.

1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보배의 은퇴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보배는 이날 검정 드레스 차림으로 나왔다. 그는 “1997년 처음 활을 잡고, 27년 동안 이어온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며 소감을 밝혔다.

기보배는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어 2012 런던올림픽에서 개인전, 단체전 2관왕을 하며 세계 정상에 올랐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동메달을 수확했다.

양궁 세계선수권대회, 세계 양궁월드컵 파이널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쓸어 담은 메달만 금메달 37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다. 2017년에는 대한민국 체육훈장 최고등급인 청룡장(1등급)을 받았다. 2017년 결혼과 출산 후에도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기보배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열린 지난해 국가대표에 복귀했지만 결국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화려했던 현역 시절 중에서도 아쉬운 순간은 있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인전 준결승 당시 팀 동료 장혜진과 맞붙었다가 패했을 때다. 기보배는 “올림픽 개인전 2연패 문턱에서 무너지는 내 모습을 봤다”며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정도였다”고 했다.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으로는 런던 올림픽 개인전 결승전 슛오프를 꼽았다. 기보배는 당시 멕시코의 로만과 5세트까지 5대5 동점을 이뤘고, 결국 마지막 한 발로 승부를 가르는 슛오프에 돌입했다. 먼저 활시위를 당겼던 기보배는 8점을 쏘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데 로만도 8점을 쐈고, 과녁 중앙에서 화살이 더 가까웠던 기보배가 극적으로 금메달을 따낸 경기였다. 기보배는 “양궁 인생의 반환점이 됐다”며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2012 런던 올림픽 개인 결승전 슛오프에서 활시위를 당긴 기보배의 모습./ SBS

기보배는 은퇴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선 “올림픽에 나가는 건 상상하지 못할 고충과 부담감이 동반된다”며 “2023년에 태극마크를 힘들게 달았는데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과연 리우, 런던 때처럼 그런 마음가짐으로 준비할 수 있을까 의심도 들었다”고 했다. 이어 “뒤를 이어줄 후배들을 생각하며 ‘잘 해낼 거라고 믿고 자리에서 물러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기보배는 “예전에는 딸에게 절대 모든 스포츠를 시키지 않을 것이라 말했지만, 딸이 승부욕이 엄청나 뭘 해도 잘할 것 같다”고 밝혔다.

기보배는 앞으로 양궁을 대중들에게 알리는데 전념할 계획이다. 그는 “그간 받은 넘치는 국민적인 사랑과 관심을 돌려드리고 싶다”며 “누구나 양궁을 쉽게 접하고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