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내 한복 가게인 '꽃길걷는서울' 앞에는 한복을 사려고 몰려든 고객 줄이 30~40m가량 길게 늘어섰다. '꽃길걷는서울' 사장 성유현씨는 어려움을 겪던 시기 도와준 손님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시가 20만~35만원 정도 하는 한복 한 벌을 1000원에 판매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장윤 기자

“어려서부터 천원에 한복을 판매하는 것이 간절한 꿈이었어요. 행사 준비로 몸살을 앓았지만, 오늘처럼 많은 분이 웃으며 한복을 고르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넉넉하네요.”

지난 18일 오전 11시 30분 찾은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 내 한복 가게 ‘꽃길걷는서울’. ‘1000원 한복’을 구매하기 위해 몰려든 손님 300여 명이 줄을 서고 있었다. 가게 점원이 “지금부터 한복 구매가 가능하다”고 하자 5~6명씩 한 팀을 이룬 손님들은 가게 안으로 들어가 한복을 한 벌씩 집어 들고 기부함에 1000원짜리 지폐를 넣었다. 이날 한복을 구매하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줄을 선 손님도 있었다고 한다.

사장 성유현(39)씨는 지난 13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1000원에 한복을 판매하는 행사를 열겠다고 밝혔다. 행사 수익금은 전액 기부하기로 했다. 성씨는 아버지가 1983년 문을 연 한복집을 지난 2017년부터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성씨는 “작년 10월 매출이 급감하면서 폐업 위기에 처했었는데,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게를 홍보해준 주변의 도움으로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며 “도움을 받은 만큼 손님들에게 베풀고 싶었다”고 했다. 한복 가격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0만~35만원에 판매된다. 원단 원가만 최소 5만5000원이라고 한다. 상당한 적자를 감수하고 행사를 진행한 것이다.

이날 가게를 찾은 김미숙(59)씨는 “딸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을 보고 가 보라고 했다”며 “평상시에는 값이 비싸 엄두도 못 내는 한복을 4벌 샀다”고 했다. 김씨는 “딸과 커플로 입으려고 검은색 누빔 치마를 두 개 샀고, 좋은 취지의 행사라 추가로 5000원을 기부했다”고 했다. 딸과 함께 가게를 찾은 일본인 구마가이 지카(46)씨는 “딸이 2살이 될 때까지 한국에 살았는데, 색동저고리를 입혀 돌잔치를 했던 기억이 난다”며 “딸에게 다시 예쁜 색동저고리를 입혀주고 싶었다”고 했다. 딸 안수진(18)양은 “이번 설에 걸그룹 ‘아일릿’이 한복 화보를 공개했는데 너무 단아했다”며 “멤버들이 입은 흰 저고리와 연한 파스텔 톤 치마를 샀다”고 했다.

성유현 사장

‘1000원 한복’ 행사는 이날 오후 3시에 끝났다. 1000여 명이 가게를 찾았고, 준비한 한복 2000벌 중 두 벌만 남았다고 한다. 사장 성유현씨는 “코로나 시기를 겨우 버텼지만, 작년 말 매출이 더욱 떨어졌다”며 “월 2500만원의 고정지출을 감당할 수 없어 폐업을 준비했었다”고 했다. 작년 12월 한 트위터 유저가 “광장시장 골목을 환하게 비추던 한복집이 영업난으로 문을 닫는다고 한다”며 홍보 게시글을 작성해 주었다고 한다. 트위터 유저와 성씨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고 한다. 성씨는 “다음 날 약 100명의 손님이 가게를 찾았고, 매일 50명 이상의 손님이 들렀다”며 “그날 이후 손님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이번 행사를 준비했다”고 했다.

최근 한복 산업은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 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한복 소매업 매출액은 2015년 대비 32.9% 감소했다. 20년째 광장시장에서 한복을 판매해온 오경희(67)씨는 “해마다 손님이 줄어드는 것이 체감된다”며 “원래 광장시장의 대표 상품은 ‘한복’이었는데 지난 10년 사이 주변 한복 점포 3분의 1 이상이 장사를 접었다”고 했다. 이번 설 연휴에도 한복 가게들은 대목 효과를 누리지 못했다고 한다. 1987년부터 한복 가게를 운영해온 신모(70)씨는 “과거에는 명절이나 결혼식이 몰리는 봄과 가을이 대목이었는데, 손님이 워낙 줄어 이제 대목을 따질 형편도 안 된다”며 “옛날엔 도난도 많았지만, 요즘은 한복을 훔쳐가는 사람도 없다”고 했다. 또 다른 한복 가게 주인 이모(49)씨는 “이제 한국인 손님들은 거의 없고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 손님들인데, 이들도 이불을 사가지 한복은 거의 사지 않는다”고 했다.

성유현씨도 작년 폐업 위기를 겪으면서 살던 집을 팔았다. 지금은 가게 근처의 월세 30만원 작업실에서 살고 있다. 그는 “1000원에 한복을 팔면 적자는 무조건 난다”면서도 “많은 사람이 기쁜 마음으로 한복을 구매하는 오늘 같은 날을 간절히 소망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설이 지나도 한복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행사로 광장시장 한복 상인들은 “광장시장 한복이 크게 홍보됐다”며 기뻐하고 있다고 한다. 성씨는 이번 행사 모금액에 사비 1000만원을 더해 사회 취약 계층에 기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