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학부생이 ‘병역명문가’ 선정을 위해 병무청을 상대로 나 홀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다. 이주형(28·연세대 행정학과 4)씨는 14일 본지에 “행정소송 끝에 병역명문가로 선정됐고 관련 병무청 제도 개선도 이끌어냈다”고 했다.

2022년 군에서 전역한 이씨는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고(故) 이중우(1936~2020)씨의 바람대로 병무청 ‘병역명문가’ 신청을 했다. 이씨가 전역하면서 3대 군 복무가 끝났기 때문이다. 이씨의 조부는 육군 공병으로 6·25 전쟁 이후 복무했다. 전후 복구에 참여한 사실을 평생 자랑스럽게 얘기하며 이씨에게도 꼭 군 현역 복무를 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병역명문가는 가족 1대부터 3대까지 장교·부사관·병으로 군 현역 복무를 성실히 마친 집안에 대해 국가가 병원비·공원·박물관 입장료 할인 등 혜택을 주는 제도다.

하지만 병무청은 이씨 집안이 병역명문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통보했다. 조부의 병적 기록에 1959년 사흘 동안 ‘탈영’이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씨는 본지에 “평소 군 복무를 강조하는 할아버지가 탈영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고, 육군 기록에 탈영 직후 어떠한 징계도 없이 병장으로 정상적으로 진급했다고 나와 법의 판단을 받아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학부생 홀로 행정소송을 준비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료 및 법리를 꼼꼼히 검토했고, 조부가 1959년 7월 부산 소속 부대에서 경남 공병 교육대로 파견 명령을 받아 이동할 당시 태풍 피해로 주변 길이 끊겼다는 것을 찾아냈다. 이 때문에 불가피하게 제때 부대에 도착하지 못한 것이지, 군무를 피할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지난해 10월 광주지법은 “원고 측 조부가 군무 이탈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이를 인정한 다른 증거도 없어 병역명문가로 선정하지 않은 처분은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이씨 가족은 지난해 12월 병역명문가로 선정됐고, 병무청은 올해 4월까지 관련 제도를 개선하기로 했다.

이씨는 “조부는 군 복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공병부대를 직접 시찰하러 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던 분”이라며 “전후 복구에 대한 자부심으로 평생 사셨던 할아버지의 헌신을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병무청은 14일 본지에 향후 병역명문가 심사 과정에서 “기록상 ‘탈영’이라고 돼 있어도 해당 여부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 소명 기회를 부여하고 심사위원회에서 판단하기로 지침을 다음 달 중에 개정할 것”이라고 했다. 병무청 관계자는 “병역명문가로 선정해달라는 소송은 처음이었다”며 “병역명문가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이씨는 “병역명문가 선정 제도를 바꾸게 되면서 조부가 생전 강조하셨던 사회적 헌신을 조금이나마 하게 된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