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7세 나이로 성인 국가대표팀에 뽑히며 16년간 한국 여자 배구를 세계 정상권에서 경쟁하도록 이끌었던 ‘배구 소녀’ 김연경(36·흥국생명). 그 태극 마크 반납식이 8~9일 이틀 동안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열렸다. 원래 2021년 열렸던 도쿄올림픽이 끝나고 국가대표에서 은퇴했지만 당시 코로나 여파로 따로 행사를 치르지 못하다가 이번에 국내외 동료 선후배, 지인들을 초청해 긴 여정을 돌아보는 기념 행사를 가졌다.

김연경이 8일 서울 송파구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관객들이 핸드폰으로 만든 불빛들 사이로 등장하고 있다. 김연경은 이날 열린 국가대표 은퇴식에서 특유의 유쾌함으로 밝은 분위기를 이끌었다. /연합뉴스

8일엔 김연경보다 먼저 은퇴한 한유미(42)·김해란(40) 등 선배들, 김수지(37·흥국생명)·양효진(35·현대건설) 등 그와 함께 올림픽 무대를 누볐던 동료와 현재 V리그에서 떠오르는 후배 선수들이 두 팀으로 나눠 친선경기를 가졌다. 9일엔 올림픽 2관왕(2008·2012) 세일라 카스트루(41·브라질), 2012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나탈리아 페레이라(35·브라질), 러시아 여자 배구 레전드 나탈리야 곤차로바(35) 등 해외 스타 10명도 날아왔다.

2012 런던 올림픽 사령탑 김형실 감독과 2016 리우 올림픽 사령탑 이정철 감독, 지난해까지 한국 대표팀을 이끈 세자르 에르난데스(스페인) 감독과 현재 김연경 소속 팀 흥국생명을 이끄는 마르첼로 아본단자(이탈리아) 감독 등 김연경을 지도했던 스승들이 두 차례 친선전에서 감독을 맡았다.

이틀간 배구장에 관중 1만2000여 명이 찾아 이 ‘작별 축제’를 즐겼다. 선수들 몸짓 하나하나에 환호성과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주인공 김연경이 스파이크를 날리고 몸을 날려 리시브를 할 때 함성이 더욱 컸다. 선수들도 친선경기임에도 정식 경기 못지않은 열정과 경기력으로 관중 기대에 부응했다. 평소 김연경과 친분이 있는 개그맨 유재석과 송은이, 배우 이광수와 정려원, 나영석 PD, 전 축구 국가대표 이영표와 김영광 등 유명인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가수 테이, 걸그룹 엔믹스 축하 공연도 분위기를 띄웠다.

김연경은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지 몇 년이 흘러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울컥하는 마음은 여전하다”며 “열 살 때 배구를 시작해 국가대표를 꿈꾸며 앞만 보고 달렸던 소녀가 커서 국가대표 꿈을 이뤄냈고, 한 팀을 이끄는 리더로 성장했다. 부담감과 중압감도 많았지만 응원과 성원 덕분에 힘든 시간을 잘 버텼다. 계속해서 배구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연경은 16년간 한국 여자 배구 ‘수퍼 에이스’였다. 올림픽 3회, 아시안게임 4회, 세계선수권 3회 등 숱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고, 두 차례 올림픽 4강 진출(2012 런던·2021 도쿄)과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끌었다. 그가 태극 마크를 달고 뛴 경기만 271경기. 총 4981득점을 올려 역대 1위다. 2위는 김희진(33·IBK기업은행) 1953점. 넘보기 힘든 차이다. 김연경은 코트 안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도 했다. 특히 도쿄올림픽 한일전 도중 뒤지던 상황에서 동료 선수들에게 “해보자! 후회 없이”라고 외친 뒤 역전승을 이끌어낸 장면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코트에서 시원하게 욕설을 내뱉는 호쾌한 모습으로 ‘식빵 언니’라는 별명도 얻었다.

9일 경기에 앞서 김연경이 유소년 스포츠 활성화를 위해 올해 설립한 장학재단 ‘KYK 파운데이션’ 출범식도 열렸다. 해외에서 선수 생활을 하면서 외국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보고 장학재단 설립을 구상해왔다고 한다. 배구뿐만 아니라 여러 종목 유소년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금전 지원과 훈련 기회 등을 제공할 계획. 김연경은 “유소년의 성장은 자연스럽게 아마추어와 프로 리그, 국가대표 발전으로 이어진다”며 “스포츠를 좋아하고 재능이 있지만 환경이 어려운 친구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