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경북 칠곡군의 한 마을을 지키다 전사한 참전 용사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칠곡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용사가 전사한 뒤 74년만이다.
20일 경북 칠곡군 가산면 응추리 마을회관 앞에 마을 주민 20여명이 모였다. 마을회관 앞에는 ‘응추리에 잠들다 故 김희정 육군 중위 추모식’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나무에 걸려 있었다. 마당 한켠에는 주민들이 직접 응추리에서 재배한 쌀과 감자, 마늘을 비롯해 고사리 등 산나물, 산딸기 등이 한가득 놓여 있었다. 주민들이 캐낸 산삼 다섯 뿌리도 눈에 띄었다.
이날 응추리 주민들이 농산물을 들고 모인 이유는 6·25 전쟁에서 전사한 김희정 중위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김 중위는 해방 이후 국방경비대에서 부사관으로 복무하다 6·25 전쟁이 터지자 백선엽 장군이 이끌던 육군 1사단 15연대 소속으로 참전해 칠곡에서 장교로 임관했다. 그는 국군이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낙동강 방어선에 배치됐고 지난 1950년 9월 벌어진 가산~팔공산 전투에서 바로 이곳 응추리 마을에서 27세로 전사했다. 김 중위 등의 필사적인 분전 끝에 국군은 북한군 공세를 막아냈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전세 역전의 계기가 됐다.
응추리 마을에 묻힌 김 중위의 유해는 전사 72년 뒤인 2022년 9월에 발굴됐고, 신원 확인 및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지난 5월 은성화랑무공훈장과 함께 유가족에게 전달됐다. 지난 19일 김 중위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이 같은 사연을 접한 응추리 주민들은 마을을 지켜낸 고인에 대한 추모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했다. 이종록(60) 응추리 이장이 “우리 마을을 지킨 용사에게 작게나마 보답을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팔을 걷었고, 주민들이 논의 끝에 “그 분이 지킨 땅에서 재배한 농산물을 유가족에게 전달하자”고 뜻을 모았다. 추모식에서 응추리 주민 홍승하(51)씨는 “중위님, 저는 당신이 잠든 응추리에서 태어나 반백년을 살았습니다”라며 “당신이 목숨과 맞바꿔 지킨 이 땅에서 우리는 새로운 행복과 희망 속에 잘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당신을 기억하고 또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칠곡군 내 천재어린이집에서도 원생 15명이 김 중위를 추모하는 그림과 편지를 부쳤다. 이날 최유준(7)군·김주하(6)양은 손글씨로 ‘우리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쓴 그림 편지를 낭독하며 농산물과 함께 부쳤다. 응추리 주민들은 이날 택배 상자 5개에 농산물과 편지를 넣어 대구에 거주하는 김 중위의 유가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나라를 지키다 스러진 용사에게 보답하기 위해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전달한 응추리 주민들이 자랑스럽다”며 “앞으로도 호국의 고장 칠곡군은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최선을 다해 예우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