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3대 화가로 불리는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1843~1897)의 ‘고사인물도(故事人物圖)’ 2점이 128년 만에 처음 공개된다. 고사인물도는 역사 인물의 일화를 주제로 그린 그림. 이번에 공개된 고사인물도 2점은 고종이 1896년 5월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대관식을 맞아 보낸 선물 중 일부로 러시아 크렘린 박물관이 소장해온 것이다.
러시아에 선물로 보낸 장승업의 고사인물도는 ‘노자출관도(老子出關圖)’ ‘취태백도(醉太白圖)’ ‘왕희지관아도(王羲之觀鵝圖)’ ‘고사세동도(高士洗桐圖)’ 등 총 4점이다. 고종이 니콜라이 2세에게 보낸 선물 17점에 포함된 것으로 이 중 ‘노자출관도’ ‘취태백도’ 2점은 작년 러시아에서 공개됐고, 이번에 ‘왕희지관아도’와 ‘고사세동도’가 새로 공개됐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 대사는 26일 “뿌쉬낀문화원(원장 김선명)과 함께 조러수호통상조약 140주년을 기념, 오는 7월 8일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서 ‘조선과 러시아, 140년 전 맺어진 우정’을 주제로 특별 기획 전시에 나선다”며 “이 전시회를 통해 장승업의 고사인물도 미공개 작품 2점과 기존 공개된 2점 등 모두 4점이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다. 대사는 “한국인에게 멋진 기회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이번 전시회는 당초 조러수교통상조약문과 고종이 러시아 황제에게 보낸 15통의 친서 등 문서 위주로 전시회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러시아와 문화 교류에 앞장서 온 김선명 원장이 크렘린박물관과 접촉해 장승업의 미공개 고사인물도 2점에 대한 전시 약속을 받아내면서 확대 성사됐다. 크렘린 박물관은 원본을 보내지는 않고, 영인본 전시에 합의했다.
러시아 크렘린박물관은 앞서 지난해 2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국과 무기고, 마지막 황제 대관식 선물의 역사’ 특별전을 통해 ‘노자출관도’ ‘취태백도’를 공개했다. ‘노자출관도’는 주(周)나라 벼슬을 내려놓은 노자가 함곡관을 지나 은거했던 고사를 그린 것이고, ‘취태백도’는 술을 마시고 나서야 시를 썼다는 당나라 시인 이백(이태백)을 묘사한 그림이다.
이번 공개되는 ‘왕희지관아도’ ‘고사세동도’는 작년 2점이 공개된 지 1년 6개월 만에 추가 공개되는 것이다. ‘왕희지관아도’는 동진의 서예가 왕희지가 목이 유연하게 변하는 거위를 보고 서예의 영감을 얻은 고사를 그린 것이고, ‘고사세동도’는 원나라 화가 예찬이 집 뜰의 오동나무도 씻을 정도로 결벽증을 보인 일화를 소재로 그린 작품이다. 높이 174㎝에 이르는 대작으로 작품에 ‘吾園(오원) 張承業(장승업)’ 서명 앞에 ‘朝鮮(조선)’ 국호를 붙였다.
윤범모 동국대 명예석좌교수는 “이번에 전시되는 장승업의 ‘고사인물도’ 2점은 존재는 알려져 있지만 실제 작품이 공개되는 것은 처음”이라며 “실물 크기의 해상도 높은 영인본 형태여서 원본을 보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종은 명성황후 시해 넉 달 뒤인 1896년 2월 11일 일본군이 점령한 경복궁을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아관파천’으로 러시아를 믿고 의지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서 5월 26일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을 맞아 민영환을 전권공사로 파견하며 선물 17점을 러시아 황제에게 전달했다.
김선명 원장은 “고종이 니콜라이 2세에 보낸 선물 17점 중 13점은 크렘린박물관에, 나머지 2점은 동양박물관에 소장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나머지 2점(병풍)은 아직 행방이 묘연하다”고 했다. 전시 기간은 7월 8일부터 8월 3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