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챔피언 출신 홍수환씨가 27일 본지와 인터뷰하며 파이팅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 달 1일 개최되는 파나마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홍씨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을 경축 특사단으로 파견했다. /이태경 기자

프로 복서 홍수환(74)씨가 1977년 파나마 원정 경기에서 ‘4전 5기’ 신화를 쓰며 거둔 역전 KO승은 한국 프로 복싱사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홍씨는 당시 스물일곱 나이에 적진인 파나마에서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초대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런 그가 47년 만에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다시 파나마를 찾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 달 1일 개최되는 호세 라울 물리노 파나마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홍수환씨와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을 경축 특사단으로 파견했다.

홍씨는 27일 본지 인터뷰에서 “올해가 ‘4전 5기’ 47주년이고,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50주년인데 파나마를 다시 방문할 수 있게 돼서 고마운 마음”이라고 했다. 홍씨는 1974년 남아공에서 WBA 밴텀급 챔피언 타이틀을 따고선 어머니 황농선 여사와 국제전화로 통화하면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1977년에는 파나마에서 열린 주니어페더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와 맞붙었다. 홍씨는 당시 2라운드 때 카라스키야 공격에 4번 다운됐지만 다시 일어났고 결국 3라운드에서 KO승을 거뒀다. 4전 5기 신화는 이때 탄생했다.

홍수환씨가 1977년 파나마에서 열린 챔피언 결정전에서 상대를 다운시키는 모습. /유튜브

홍씨는 “카라스키야와의 경기 전날(1977년 11월 26일) 나에게 엄청난 희망과 용기를 준 것이 한국 야구였다”고 했다. 당시 한국 야구 대표팀은 중앙아메리카의 니카라과 수퍼월드컵에서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최초로 국제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홍씨는 “우리 야구가 종주국인 미국에 이어 일본을 이기는데 나도 먼 이국 땅에서 챔피언을 차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홍씨가 파나마를 찾는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홍씨는 1998년 KBS ‘도전 지구탐험대’ 프로그램 주선으로 파나마에서 카라스키야와 만난 데 이어 2020년 다시 파나마를 찾아 4체급을 석권한 로베르토 두란과도 만났다. 카라스키야는 은퇴 후 정치인으로 데뷔했고, 국회의원 신분으로 한국을 수차례 찾아 홍씨와 만났다. 홍씨는 “파나마 대통령도 복싱을 상당히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특사단 방문에서 두란이나 카라스키야와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홍씨는 지난 2017년 카라스키야가 한국을 찾았을 때 “카라스키야 덕에 먹고 산다”고도 했다.

홍씨는 윤 대통령과도 남다른 인연이 있다. 홍씨는 2022년 3월 대선에 앞서 윤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면서 당시 서울 신촌 유세장에서 윤 후보에게 글러브를 선물했다. 카라스키야가 2016년 방한 때 자신의 사인을 담아 홍씨에게 선물한 글러브였다. 윤 후보는 홍씨가 끼워준 이 글러브를 착용하고 ‘어퍼컷’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홍씨는 “윤 대통령이 유세하면 할수록 라이트 어퍼컷이 정교해지는 걸 보고 놀랐다”고 했다. 홍씨는 “카라스키야도 자기 사인이 있는 글러브를 윤 대통령이 끼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됐다고 아주 기뻐했다”고 했다.

파나마는 중남미 해운·물류 중심지로 한국 기업의 중남미 진출을 위한 주요 관문이다. 양국은 1962년 수교했고 2023년 기준 양국 교역액은 14억2만달러다. 코스타리카·온두라스 등 중미 8국 전체 교역액(34억3400만달러)의 41%를 차지한다.

윤 대통령은 이번 특사단을 통해 물리노 대통령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면서 “양국 관계 강화를 위해 협력해 나가길 바란다”는 내용의 친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홍씨 등 특사단은 파나마 고위 인사를 면담하고 동포 간담회, 현지 한국 기업 방문 등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