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순재가 연극 '리어왕' 포스터 앞에 선 모습. /뉴스1

연기 경력 69년 차 대배우 이순재(89)가 그동안 남몰래 겪었던 건강 악화를 고백했다.

이순재는 1일 방송된 채널A 시사·교양 프로그램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 식탁’에 출연해 작년 연극 활동 중 약해진 몸 상태에 대해 털어놨다. 그는 “연극 ‘리어왕’을 하면서 몸무게가 10kg이나 빠졌다”며 “그때 작품 4개를 연달아 계속했다. ‘아트’ ‘장수상회’ ‘갈매기’를 마치고 ‘리어왕’으로 넘어갔는데 일이 물리니까 침을 맞아가며 버텼다”고 회상했다.

이어 “쓰러지지 않고 잘 버텼는데 그 뒤에 목욕탕에서 쓰러졌다”며 “당시 ‘아, 이건 내 인생 끝이구나’ 생각했었다. 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머리는 괜찮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당시 이순재는 ‘리어왕’에서 최고령 리어왕 역을 맡아 2시간이 넘는 독백 연기를 펼쳤고, 작품은 전 회차 매진 기록을 쓰며 관객들을 열광케 했다.

이런 아찔했던 사고에도 이순재의 연기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는 “일어나서 한 달도 안 돼서 약속된 드라마를 찍기 시작했다”며 “촬영을 6개월 이상 강행했더니 결국 눈에 무리가 와서 백내장 수술을 했다”고 말했다. 당시 이순재는 시력 회복이 덜 된 상황에서도 제작사 측 사정을 고려해 “내 표정만 잘 보이면 촬영 하자”며 연기 투혼을 펼쳤다고 한다.

이순재가 채널A ‘절친 토큐멘터리 4인용 식탁’에 출연해 지난 69년 간의 연기 생활을 돌아봤다. /채널A

이순재는 연기와 함께한 지난 60여 년간의 삶을 돌아보며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관객과의 약속이 먼저였다”고 고백했다. 또 무용수로 활동하다 자신과 결혼한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연애 시절에는 러브레터를 썼지만 결혼 후엔 단 한 통도 쓰지 않았다”며 “결혼기념일도 기억 못 하고 애정 표현도 못 하지만 살아보니 아내뿐”이라고 말했다.

절친한 후배인 신구(87)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순재는 “인기에 취해 현실에 안주하다 사라진 배우들이 많다. 신구는 데뷔 63년 차인데 늦게 떴다. 바로 인기를 얻은 사람이 아니다”라며 “화려한 역할을 한 배우가 아니지만 천천히 단계별로 성장했다. 결국 톱배우가 되지 않았냐”고 했다.

이순재는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해 지금까지 꾸준한 작품 활동을 펼치는 대배우다. 그는 앞서 지난 3월 극단 실험극장 창립동인으로 함께 활동했던 연극배우 고(故) 오현경씨의 영결식에서 “나도 곧 갈테니 우리 가서 다 같이 한번 만나세”라는 작별 인사를 건네,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