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5시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청소년센터. 입구에 들어서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음악이 흘러나왔다. 이 소리를 따라 센터 4층에 올라가니 초·중학생 등 60여 명이 모여 플루트, 색소폰 등을 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서대문구 청소년 윈드 오케스트라’. 서대문구가 작년 3월 다문화 가정, 한부모 가정 등 아이들 50여 명을 모아 창단했다. 오는 11일과 13일 첫 해외 공연을 앞두고 막판 연습 중이었다. 국내 공연을 통해 갈고닦은 실력을 클래식의 본고장인 오스트리아 빈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선보이는 것이다. 빈 무대는 ‘빈 소년 합창단’이 주로 공연하는 ‘다스 무트 음악당’이다.
윈드 오케스트라는 바람을 불어 소리를 내는 관악기 위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다. 바이올린 같은 현악기가 없어 초보자들도 쉽게 오케스트라를 꾸릴 수 있다.
오케스트라는 이철웅 연세대 관현악과 교수가 이끈다.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이 직접 모셔왔다고 한다. 이 교수는 “그동안 지역의 아이들에게도 음악을 가르치고 싶었다”며 “어릴 적 꿈꿨던 그 무대를 아이들에게 선물한다고 생각하니 내가 더 설렌다”고 했다.
현지에서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음악 외에도 아리랑, 방탄소년단(BTS)의 ‘다이너마이트’, 빌리지 피플의 ‘YMCA’ 등을 연주한다. 아이들을 돕기 위해 전문 연주자 10여 명이 아이들 사이사이에 앉아 함께 연주한다.
색소폰을 연주하는 A(13)양은 베트남 출신 엄마, 언니와 함께 산다. 엄마가 식당에서 일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학교 수업이 끝나면 지역아동센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A양은 지역아동센터 친구의 권유로 오케스트라에 들어왔다. A양은 “처음엔 소리가 나서 재미있었는데 연습을 하면 할수록 힘들어서 매일 포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A양에게 힘을 준 건 관객들이었다. “작년 8월 제주국제관악제 공연 때였어요. 처음부터 박자를 틀려서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손뼉 치면서 박자를 맞춰줬어요. 덕분에 끝까지 잘 마쳤습니다. 박수 소리에 너무 뿌듯했어요.”
배우가 꿈이었다는 A양은 “이제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고 한다.
음악은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허모(13)군은 “오케스트라에 들어오기 전에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게 부끄러웠는데 지금은 친구들 앞에서 신나게 트롬본을 분다”고 했다. 호른을 부는 유모(13)양은 “호른을 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무슨 악기냐’고 묻는다”며 “그럴 때마다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했다.
오케스트라에 들어오기 전에는 리코더나 단소만 불었던 아이들이다. 처음에는 악보 보는 법도 몰라 악보 하나 외우는 데 일주일 넘게 걸렸다고 한다.
이번 공연을 위해 매주 토요일 3시간씩 연습했다. 매일 혼자 연습하는 아이들도 생겼다. 유양은 “처음에는 내가 어떻게 유럽에서 연주하나 싶었는데 선생님이 ‘못하는 애들은 빼고 유럽 간다’고 해서 목에 피가 날 정도로 연습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유럽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면 열렬하게 기립 박수를 쳐준다”며 “아이들이 ‘나도 이런 멋진 무대에서 박수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8일 헝가리 부다페스트행 비행기에 올랐다. “공연도 공연이지만 비행기 타는 게 처음이라 너무 떨려요.” 악기 가방을 든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