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이 축구협회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직접 펴낸 자서전으로 입을 열었다.

30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회고록 ‘축구의 시대’가 출간돼 판매되고 있다. ‘축구의 시대’는 정 회장이 축구 인생 30년을 되짚어 보며 작년 여름부터 집필한 책이다. /뉴스1

‘축구의 시대-정몽규 축구 30년’에는 아시안컵 요르단전 참패, 감독 선임 논란, 사면 파동 등 축협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정몽규 회장의 소회가 담겼다. 정 회장은 “12년 동안 대한축구협회장으로 일하면서 여러 가지 논란에 휩싸였다. 잘못된 판단에 대한 질책도 있었고 오해에서 비롯된 공격도 있었다”면서 “때로는 아프게 반성한 적도 있었고, 간혹은 악의에 찬 왜곡에 서운한 적도 있었다”고 적었다. 정 회장은 2013년 1월 제52대 대한축구협회 회장으로 당선돼 2016년 6월까지 3년 6개월 동안 첫 임기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리고 2016년 7월부터 2021년 1월까지 4년6개월간 제53대 회장으로 활동했다. 또한 2021년 1월부터 현재 2024년 7월에 이르기까지 제54대 회장 임기를 보내고 있다.

◇결승 무산에 나도 의아… 원팀 균열 문제

정몽규 회장은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에서 선수 간 하극상 논란 속에 4강 탈락의 고배를 마신 축구대표팀을 보면서 “카타르에 도착한 날 저녁에 선수들에게 원팀이 되지 못하면 절대 우승할 수 없으며, 훌륭한 선수보다는 원팀이 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대표팀이 결국 원팀이 못 되고 내부 균열이 벌어져 결승 진출이 무산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돌아봤다.

당시 대표팀은 이후 대회 준결승에서 요르단에 0-2로 완패해 64년 만의 우승 꿈이 깨졌다. 정 회장은 “(요르단전이) 너무 무기력한 경기력이어서 나 역시 의아한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왔다. 경기가 끝나고 숙소에 돌아와서 너무도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됐다. 경기 전날 저녁 식사 시간대에 손흥민 선수와 이강인 선수가 몸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손흥민의 손가락이 탈골돼서 붕대를 감싼 상태로 경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또 경기 당일 주장 손흥민을 제외한 일부 고참 선수들이 클리스만 감독을 찾아와 이강인을 출전 선수명단에서 빼달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경기를 준비하기 위해 숙소를 출발하기 두 시간 전쯤이었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클리스만 감독이 고참들에게 ‘지금 이강인을 빼면 이강인 뿐만 아니라 너희들에게도 평생 후회하는 일이 될 것이다. 만약 이강인이 경기장에서 제대로 플레이하지 못 하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내가 30분 안에라도 곧장 교체하겠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 경기에서 이강인은 풀타임으로 뛰었다”며 “이런 정황을 듣고 나니 요르단전이 왜 그렇게 무기력했는지에 대해서는 일단 이해가 됐다”고 적었다. 그러나 언론에 알려진 것에 대해서는 “저녁 식사 시간대에 상황이 벌어져서 선수와 스태프, 호텔 직원 등 목격자가 거의 70명 정도였다고 한다. 보안을 철저히 하라고 당부했지만 워낙 목격자가 많아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판단됐다”고 설명했다.

결국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아시안컵 부진의 책임을 지고 경질됐다. 클린스만 감독에 대해선 “선수들이 각자 스스로 프로페셔널 해야 한다고 확고한 소신이 있었다”라며 “감독은 대등한 관계 속에서 선수들을 존중하면서 이들이 경기장에서 가장 좋은 퍼포먼스를 펼치도록 도와주는 것이 임무이자 업무라고 판단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평소 생활이나 숙소에서의 활동, 식사 시간 등은 최대한 자유롭게 해주려고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감독 선임 논란… 팬들 오해로 욕먹고 비난 받아

정 회장은 감독 선임에 대해서도 상세히 적으면서, 팬들의 오해에 의해 욕을 먹는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정 회장은 “카타르 본선을 이끌었던 벤투 감독은 4년 이상 대표팀을 이끈 국내 최장수 국가대표팀 지도자였다. 협회도 그동안의 성과를 충분히 인정해 본선에 나가기 전 연장 계약을 제시했다. 그때가 6월경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2023년 9월에 중국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아시안컵까지 일단 연장한 뒤 다시 재계약을 논하는 방안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벤투는 그런 방식의 계약은 자기 철학과 맞지 않아 곤란하다며 무조건 다음 월드컵까지 4년 단위의 재계약을 원했다. 그래서 벤투에게 9월 A매치 기간까지 본인의 연임 가능 여부를 알려 달라고 했는데, 벤투는 그 기간 중에 협회보다 대표팀 선수들에게 카타르 월드컵을 마치고 한국을 떠나겠다는 의사를 먼저 표명했다. 협회는 자연스럽게 카타르 월드컵 이후의 감독 선임에 대한 고민과 준비를 하게 됐다”면서 “이런 사정을 모르는 일부 팬들이 16강의 성과를 거둔 벤투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았다면서 협회를 비난했다. 협회는 이런 식으로 오해에 의해 욕먹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했다.

벤투 사임 이후 3달여 만인 지난해 2월 27일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선임됐다. 정 회장은 “클린스만 감독과 내가 이전부터 개인적 친분이 두터웠고, 카타르 월드컵 이후 새 감독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내가 클린스만을 사실상 낙점해 계약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팩트 또는 그에 가까운 일부분과 자신들이 추정하는 부분을 합성하여 마치 모든 것이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클린스만과 이전부터 아는 사이였던 것은 맞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오래된 지인이 클린스만과 잘 아는 사이였다. 지인과 클린스만의 딸들이 학교 과외 활동으로 승마를 같이 했고, 학부모로 교류를 하다 보니 친해졌다고 한다. 클린스만의 아들이 한국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 미국대표팀 골키퍼로 출전하게 됐는데, 서울에 왔을 때 한번 만나보면 어떠냐며 소개해쳤다. 이를 계기로 안면은 텃지만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카타르 월드컵 기간 중 재회했다. 클린스만은 FIFA TSG(Technical Study Group: 기술연구그룹)의 일원으로 카타르에 와있었고, 차두리도 이 그룹의 멤버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회 현장에서 만난 나에게 “한국 대표팀 감독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매우 적극적인 차세여서 나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후보 리스트 작업을 하면서 단계별로 후보를 줄여 나갔고, 5명의 최종 후보 리스트가 만들어졌을 때 1순위가 클린스만이었다”며 “결국 1순위였던 클린스만 감독과 먼저 협상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그와 합의에 도달했다. 처음 제시한 연봉 조건이 낮은 수준이었는데, 그가 바로 받아들였다. 아마도 클린스만에게 절실한 것은 연봉보다는 ‘북중미 월드컵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아니었나 판단됐다”고 돌아봤다.

◇사면 파동… ‘용서하지 못하면 사랑도 못해’

사면 파동에 대한 내용도 담겼다. 지난해 3월 대한축구협회가 승부조작 축구인에 대한 사면을 발표, 3일 만에 번복한 사건이다. 당시 정 회장은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성공한 뒤 한국 축구를 위해서 새로운 전기를 만들고 싶었다. 미래를 준비하면서 과거의 잘못으로 징계 받았던 축구인들 가운데 충분히 벌을 받은 이들에게는 동참하고 봉사할 기회를 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그래서 협회 내 ‘사면검토 실무위원회’를 구성한 게 2023년 2월 7일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면이 확정된 것은 3월 28일 이사회 의결을 통해서였다. 곧바로 보도자료를 통해서 언론에 발표했다. 이후 엄청난 후폭풍이 몰려왔다. 협회의 사면 결정에 대해서 팬들과 언론이 강하게 반대했다. 반대의 강도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셌다. 결국 3일 만에 다시 임시 이사회를 열어 사면 결정을 철회했다. 이후 사면 결정에 참여했던 이사진이 전원 사퇴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것이 이른바 ‘사면 파동’이었다”고 돌아봤다.

사면 파동에 대해 “용서하지 못하는 자는 사랑도 못 한다”고 적었다. 정 회장은 “요즘은 아이돌 스타도 학창 시절의 ‘학원폭력’ 논란으로 퇴출되는 세상이다. 과거의 크고 작은 잘못들이 SNS를 통해서 모두 폭로되고, 거기에 따른 사회적 응징을 받는다. 한 번 셀럽이 되면 그들의 과거사가 SNS로 모두 검증받는 세상이 됐다. 그들의 지인이나 유튜버들이 과거의 어떤 잘못도 그냥 넘어가주지 않는다”면서 “나는 승부조작 사태를 직접 겪었기에 이때의 구체적 정황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내막도 알만큼 알고 있다. 이런 사건의 성격상 완전한 적발과 척결은 있기 힘들다. 당시 연루돼 처벌받았던 사람들이 관련자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린 시절 상당히 부조리한 구조 속에서 성장했던 점, 그로부터 기인한 도덕적 불감증, 축구계의 다양한 모순 구조 등이 선수들을 승부조작이라는 유혹에 빠지게 한 주요한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환경 요소들은 빼놓고 그들만을 축구계에서 단절시키는 것만으로 어른들의 책임을 다했다고 하는 것은 위선적 측면이 있었다”면서 “결과적으로 사면심사위원회의 판단과 일반 팬들의 눈높이에 큰 차이가 있었다. 사면을 고민했던 ‘진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사려 깊지 못했다. 좀 더 숙고하고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어야 했다. 한층 엄격해진 도덕 기준과 팬들의 높아진 눈높이도 헤아렸어야 했었다”고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