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이 통일된 후 그랬던 것처럼, 북한의 군사기지도 하루속히 한국의 관광지로 변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2일(현지 시각) 독일 작센안할트주 브로켄산 정상의 옛 동독 군사기지. 재단법인 통일과나눔(이사장 이영선)의 ‘2024 교사 독일 통일 연수’ 참가자들은 동독의 최전방 군사 첩보 시설이 통일 후 관광지로 변하는 과정을 안내한 프리타트 크놀레(69) 전 니더작센주 국립공원 관광홍보국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2일 통일과나눔 재단 주최 '2024 교사 통일교육 연수'에 참가한 교사들이 동독 시절 군사기지에서 통일 후 관광지로 변모한 브로켄산을 증기기관차를 타고 방문한 후 '통일은 온다'를 외치고 있다. /이하원 기자

브로켄산은 독일의 문호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명승지였으나 분단 후 동독이 소련과 함께 서독은 물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국가를 감청하는 기지로 활용, 냉전의 상징이 됐었다. 통일 후엔 독일 비밀 경찰 슈타지 시설이 있던 곳은 박물관으로, 송신탑은 호텔로 바뀌었다.

이날 1141m의 브로켄산을 증기기관차를 타고 올라간 교사 20명은 동독의 중요한 군사기지가 식물 1500종을 관찰하며 하이킹을 즐기는 생태 공원으로 바뀐 데 큰 관심을 보였다. 경기도 파주시 파평중학교 강미성 교사는 “휴전선 인근 학교여서 통일 관련 DMZ 개발에 관심이 많다”며 “개학 후 통일 교육을 할 때 학생들과 브로켄산에 대해 얘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철원군 김화여자중학교 최춘식 교사는 “증기기관차가 동독의 군사기지였던 곳을 올라갈 때 분단으로 ‘철마’가 멈춘 월정리역을 떠올렸다”며 “앞으로 브로켄산역과 비교해 가며 수업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통일과나눔 재단은 중·고교의 사회, 역사, 윤리 과목 교사들이 동·서독 통일 과정과 통일 후 바뀐 모습을 둘러보고 생생한 교육을 할 수 있도록 처음으로 이번 연수를 마련했다. 지원자 318명의 연수 후 수업 활용 계획 등을 심사 후 지역별, 성별, 중·고교 교육기관별로 안배해 20명을 선발, 7일까지 연수를 진행 중이다.

지난달 30일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에서 참가자들을 만난 이은정 교수는 교사들이 통일을 어려운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일을 어려워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세요. 학생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통일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북한 사람들이 보기에 ‘한국은 내가 가서 살고 싶은 나라다’ 하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합니다. 독일이 통일될 때처럼 북한 사람들이 남한을 선택하게 하면 통일이 되는 겁니다.” 이 교수와 함께 근무하는 베르너 페니히 교수는 “독일 통일은 자유를 바라는 동독의 시민혁명으로 이뤄진 것인데 서독은 (통일을 이루기 위해) 방송 등을 통해 많은 정보를 동독에 보냈다”며 북한에도 자유의 바람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함을 시사했다.

참가자들은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처음 무너진 본 홀머 슈트라세, 스파이들을 교환한 그로니케 다리를 찾아 분단과 통일 현장을 체험했다. 미국, 소련, 영국의 지도자들이 2차 대전 종전 방안을 논의한 포츠담도 방문, 전후 질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1989년 자유를 바라는 동독인들의 시위가 시작돼 통일 물꼬를 튼 라이프치히의 니콜라이 교회 주변을 걸으며 북한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원했다.

통일과나눔 재단 주최 '2024 교사 통일교육 연수'에 참가한 교사들이 7월 30일 베를린 장벽이 처음 무너졌던 본 홀머 스트라세를 찾아 이은정 교수(맨 왼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이하원 기자

DMZ처럼 동독의 철조망 장벽, 초소, 차단 시설이 그대로 보존된 헬름슈타트의 동서독 국경 지역을 둘러본 서울 명일중 박남주 교사는 “동독이 체제를 지키기 위해 이중, 삼중 벽을 만들어 통제했는데, 이를 넘어 탈출하려는 동독인들의 의지와 절박감이 느껴졌다”며 “학생들에게 어떻게 통일 교육을 해야 할지 몰랐는데 이번 연수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울산 신언중의 송건우 교사는 “독일 연수를 통해 접경 지역이 연결 공간으로서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느꼈는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수업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5만6000명이 희생된 부헨발트 강제수용소의 감방과 화장(火葬) 시설을 둘러보며 북한의 강제수용소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은정 교수가 부헨발트의 추모비를 설명하다가 눈물을 흘리자 충남삼성고 진요한 교사도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 옥정중 이상석 교사는 “부헨발트 수용소 견학 경험을 학생들에게 들려주며 북한 인권의 실상을 알려주면 학생들이 통일의 필요성을 느낄 것 같다”고 했다.

참가자들은 베를린의 주독일 대사관도 방문했다. 교사들을 맞은 임상범 주독일 대사는 특강에서 “독일은 EU(유럽연합) 5억 인구 중 26%, EU GDP(국내총생산)의 25%를 차지하는 나라인데, 분단을 먼저 극복한 나라로서 대한민국의 통일 비전을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박원재 통일관은 “동서독의 심리적 격차가 지속되면서 여전히 동독 지역에서 ‘2등 국민’이라는 말이 나오는 현상을 극복하는 일이 과제”라고 했다.

이번 연수에 태극기 손수건을 들고 참가한 태금령(남양주시 미금중) 교사는 “무엇보다 교사를 통일의 매개체로 인정, 통일 독일 연수 프로그램을 만들어 준 데 대해 감사한다”며 “이번 연수는 남은 교사 인생의 전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통일과나눔 재단 주최 '2024 교사 통일교육 연수'에 참가한 교사들이 4일 동서독 통일의 물꼬를 튼 작센주의 수도 드레스덴을 방문, "통일은 온다"고 외치고 있다. /이하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