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여의도 오텍그룹 본사에서 만난 강성희 회장이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보치아 공인구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 강 회장은 “몸이 불편한데도 1시간씩 치열하게 땀 흘리며 경기에 임하는 보치아 선수들을 보면 뭉클해진다”며 “선수들을 도와줄 수만 있다면 보치아 후원만큼은 대(代)를 이어서 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인원 기자

“보치아 금메달은 엄마가 같이 딴 메달이죠. 뇌성마비 선수들은 공 던질 때 수시로 팔다리가 굳거든요. 틈틈이 옆에서 계속 마사지해줘야 하는 엄마나 코치의 헌신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성과죠.”

2024 파리 패럴림픽에서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종목인 ‘보치아’ 한국 대표팀이 ‘금메달 10연패’의 신화를 썼다. 파리 올림픽에서는 양궁이 1988 서울 올림픽 이래 10연패의 쾌거를 이루며 온 국민이 열광했지만, 같은 기간 패럴림픽에서도 한 번도 금메달을 놓치지 않은 종목이 있었던 것이다. 보치아가 지금의 성과를 낼 수 있던 배경에는 15년간 25억원을 지원하며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온 ‘숨은 조력자’가 있었다. ‘캐리어에어컨’을 인수하며 이름을 알린 오텍그룹 강성희(69)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양궁 올림픽 10연패에는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명예회장, 정의선 회장 부자가 있다면 보치아엔 강성희 회장이 있는 것이다.

원래 뇌성마비 환자를 위해 고안된 운동인 보치아는 1984년 LA 패럴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이제는 강 회장의 후원을 기반으로 노인과 어린이도 쉽게 즐기는 스포츠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보치아 후원만큼은 앞으로 대(代)를 이어서라도 하고 싶다”는 강 회장을 만나 보치아와 인연을 맺은 사연을 들어봤다.

◇‘장애인 車’로 이어진 인연

2000년에 45세의 나이로 오텍그룹을 창업한 강 회장이 보치아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2004년. 사업 초기부터 장애인을 위해 봉사 활동을 꾸준히 해온 강 회장이 국내 최초로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리프트가 달린 ‘장애인용 차량’을 만들면서다.

창업 직후부터 장애인과 취약 계층을 꾸준히 지원해 온 그는 오텍 공장이 있는 대전광역시와 광주광역시 등에서 매년 장애인의 날만 되면 급식 봉사를 했고, 장애인 복지 시설과 경로당에는 기부도 아끼지 않았다. 그런 강 회장은 2003년쯤 일본 도쿄 모터쇼에 장애인용 차량이 함께 전시돼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휠체어 리프트가 달린 버스도 볼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장애인을 위해 봉사 활동을 계속 해왔는데, 명색이 특장차를 만든다는 사람이 장애인용 차량은 왜 못 만들었을까’라고 생각했다”며 “변변한 장애인 관광버스도 한 대 없던 우리나라에서 장애인도 편하게 타고 내리는 차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장애인을 도와오던 강 회장은 2009년에 서울시 보치아 대회를 후원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서 보치아와 첫 인연을 맺었다. 장애인이 아닌데도 장애인을 위한 봉사 활동과 차량 개발에 힘쓰자 장애인 단체들 사이에서 소문이 난 것이다. “강 회장이 장애인을 계속 도와 왔다는데, 마침 보치아가 패럴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으니 연맹도 맡아달라고 하면 어떻겠냐”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다. 2015년부터는 대한장애인보치아연맹 회장을 맡게 됐다.

지난 5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사우스 파리 아레나1에서 열린 2024 파리 패럴림픽 보치아 혼성 복식 경기(BC3 종목)에서 정호원 선수가 입에 문 포인터로 공을 밀어 투구하고 있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보치아 메달은 엄마가 같이 딴 것”

강 회장의 보치아 후원은 15년간 멈추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후원을 시작했을 무렵 유독 심금을 울렸던 선수가 있었다. 보치아 전 국가대표인 김한수(32) 선수. 강 회장이 보치아 후원을 시작했던 2009년, 김 선수를 비롯한 보치아 선수단은 부산에 있는 한 농구장을 빌려 두 달간 합숙훈련에 들어갔다. 그때 강 회장이 만난 김 선수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와 함께 합숙훈련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두 달 뒤 합숙훈련을 다녀온 그와 어머니의 모습은 그야말로 ‘녹초’에 가까웠다. 장애가 있는데도 피곤해하며 꿈을 키우는 선수들의 모습에 강 회장은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보치아에서 금메달을 딴다는 것은 가족, 감독, 코치가 모두 헌신해야 가능한 일”이라며 “밥도 혼자 제대로 먹지 못하는 선수를 도와주며 공도 같이 던져주는 모습을 보면서 후원을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커졌다”고 했다.

그 후 강 회장은 매년 2억원대 후원을 이어가며 현재까지 누적 25억원을 한국 보치아 국가대표를 위해 후원해오고 있다. 지난 2018년 평창 패럴림픽에서는 108일간의 성화 봉송에 참여한 장애인 300여 명에게 승합차, 휠체어 차량, 장애인 버스를 전부 지원했다. 경기 기간에는 장애인 선수들이 공항, 숙소, 경기장을 이동할 때마다 제시간에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왔다. 강 회장은 “평창 패럴림픽에서 장애인 국제 대회를 도운 경험 덕분에 이후 국내에서 열린 각종 보치아 대회에서도 선수들의 동선, 숙소, 이동 수단을 짜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고 했다.

강 회장의 지원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패럴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긴장감 높은 국제 대회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아시아 최초로 2015 보치아 국제 오픈 대회, 2019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선수권 대회 등 주요 국제 대회를 모두 서울에서 개최하는 데 힘을 보탰다. 더 나아가 2026년 세계 보치아 선수권 대회까지 서울에서 유치하며 1988 패럴림픽을 비롯한 4대 보치아 국제 대회를 모두 한국에서 여는 기록을 세웠다.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것은 아시아에서 한국이 처음이다. 강 회장의 노력으로 국내에서 열리는 보치아 대회도 15개까지 늘었다.

◇“생활 체육으로 나아가야 장애인 체육도 성장”

아직 보치아는 장애인들의 종목으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반인도 쉽게 취미처럼 즐길 수 있는 종목으로 만드는 것이 강 회장의 꿈이다. 이미 국내에서 열리는 ‘오텍배 전국 보치아 대회’에서는 지난 2017년부터 장애인뿐 아니라 학생(초1~고3)과 노인(65세 이상)이 참가할 수 있는 부문도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매 대회 참여하는 비장애인 선수만 40여 명에 달해 장애인 선수의 3분의 2나 된다.

강 회장은 보치아가 ‘국민 종목’이 돼야 장애인 지원도 더 강화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일본만 해도 1억2000만명 인구에 ‘장애인 차량’만 연간 4만5000대가 팔리지만, 우리나라는 5000만명 인구에 팔리는 건 2000대뿐일 만큼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며 “보치아를 온 국민이 즐길 수 있는 때가 온다면 장애인 체육도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보치아(boccia)

올림픽이 아닌 패럴림픽에서만 볼 수 있는 독자적인 종목으로 ‘땅 위의 컬링’이라 불린다. 원래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해 고안돼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서 처음 공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가로 6m, 세로 12.5m 경기장에서 한 팀은 적색 공, 다른 팀은 청색 공을 6개씩 던져 흰색 공에 더 가까이 붙인 공을 점수로 계산해 승패를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