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1호 영화 감독 김규민(맨 오른쪽)이 지난 7월 11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6관에서 열린 영화 '통일오라' 다큐 상영회에 참석한 모습. 김 감독의 왼쪽은 '통일오라'의 실제 주인공 김보빈씨. /김규민 감독 제공

‘탈북자 1호 영화 감독’ 김규민(50)씨가 제작한 ‘통일오라’(2024)가 국제 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동유럽 영화제, 스톡홀름 국제영화제, 드림머신 국제영화제 등 13개 영화제 다큐멘터리 부문에 초청됐다. 래티튜드 영화제, 타미자감 국제 영화제, 로힙 국제영화제에선 “북한 인권의 처참한 실태를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고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통일오라’는 2000년대 중국으로 탈북했다가 다시 북송된 후 3년간 교화소(교도소)에 갇혀 성폭행과 강제 낙태 등 인권 유린을 당했던 여성 김보빈(42)씨의 탈북과 한국 정착 과정을 담았다. 2012년 재탈북해 한국에 온 김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건설 현장, 과일 포장, 식당 종업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상조회사에 취직해 시신을 염하기도 했다. 김씨는 한국에서 결혼, 현재 다섯 아이 엄마이자 사업가로 일하기도 했다.

김규민씨는 1974년 황해북도 봉산군의 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김일성·김정일을 신(神)처럼 떠받들며 지내다가, 우연히 한국의 라디오 방송을 듣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 체제가 북한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방황하기 시작했다. 1999년 3월 북한 지방선거 당시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있는 투표소를 부숴 투옥됐다. 공개 처형을 기다리며 “차라리 자살하겠다”며 못을 삼켰고, 병원에 가다가 탈출해 중국으로 탈북했다.

영화 '통일오라' 촬영장에서 대본 작업을 하는 김규민 감독. /김규민 감독 제공

2001년 한국에 정착한 김씨는 배우로 활동했다. 북한에서 노동당 선전원으로 연극 활동을 했기 때문이다. 실제 영화 ‘국경의 남쪽’(2006)에서 탈북 브로커로, 영화 ‘크로싱’(2008)에서 북한 안골 탄광 반장으로 출연했다.

김씨는 본지 인터뷰에서 “북한의 진실을 알리는 영화를 계속 제작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며 “3대 세습을 넘어 4대 세습까지 거론되는 북한 김씨 왕조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만행을 고발하고자 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없고,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없고,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지옥 같은 나라’ 북한을 영화로써 조금이나마 바꾸고 싶다”고 했다.

김씨는 현재 1990년대 최소 34만명이 아사(餓死)한 북한 고난의 행군 시기를 다룬 영화 ‘아바이’를 제작 중이다. 현재 캐스팅과 대본 리딩까지 완료한 상태다. 김씨의 고향 황해북도 봉산군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주인공이 북한 당국이 관리하는 소를 잃어버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