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군에서 환갑이 넘은 나이에 한글을 배운 만학도 할머니 8명이 결성한 래퍼 그룹 ‘수니와 칠공주’의 구성원 서무석 할머니가 15일 오전 8시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그룹 구성원 중 처음으로 세상을 떠난 ‘칠공주’다.
1939년 칠곡군 지천면 황학골에서 태어난 서씨는 일제강점기 등 시대적 상황으로 한글을 배우지 못했다. 서씨는 칠순이 넘은 시기에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한글 교육을 통해 뒤늦게 글을 깨쳤다.
지난해 8월 서씨는 칠곡군이 기획한 할매 래퍼 그룹인 수니와 칠공주 초기 멤버로 뽑혔다. 서씨는 그간 ‘그룹 동료’들과 함께 7곡을 만들었고, 신문과 방송, 외신, 광고 등에 나왔다. 국가보훈부 홍보 대사인 ‘보훈아너스 클럽’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서씨는 병원에서 혈액암인 림프종 3기 판정을 받았다. 당시 병원 측에선 서씨에게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내렸으나, 서씨는 암 투병 사실을 숨긴 채 9개월 넘게 생존하며 래퍼 활동을 지속했다. 투병 사실을 알리면 래퍼 활동을 할 수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고 한다. 서씨 장녀 전경숙(65)씨는 “(어머니가)가족들 외엔 암 투병 사실을 모르게 해달라고 했다”며 “래퍼 활동하시며 행복해하는 어머니 모습을 뵈니 말릴 수가 없었다. 어머님 입장에선 천국 같은 1년을 보내신 것”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이달 4일에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024 한글주간 개막식’에 참가해 한글을 배우지 못했던 아쉬움을 담은 곡인 ‘환장하지’, 배움의 기쁨을 노래한 ‘나는 지금 학생이야’ 등을 불렀다. 그러나 이틀 뒤인 6일부터 건강이 더욱 악화돼 입원했고, 이후 암이 폐로 전이됐다는 검사 결과를 받았다.
서씨 입원 소식이 전해지자 ‘원조 할매 래퍼’로 불리는 배우 김영옥(87)씨는 “만나서 랩을 하기로 약속했는데 누워계시면 안 된다”며 “병상을 박차고 일어나 팬인 제 부탁을 들어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도 “할머니께서 건강을 회복해 꼭 다시 뵙게 되길 기도한다”고 했다.
그러나 서씨는 결국 입원 9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서씨는 생전에 “열두살에 공부를 하고 싶어도 종이가 없고 연필이 없어, 포대(布袋)를 종이 삼았고 성냥을 연필 삼았다”는 내용의 시를 썼다. 또한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쓴 그림을 남겼다.
서씨와 유족들의 요청에 따라 오는 16일에는 수니와 칠공주 멤버들이 빈소에서 서씨를 추모하는 랩 공연을 할 계획이다. 또 장례지도사인 서씨의 손녀가 할머니에게 수의를 입힐 예정이다.
김재욱 칠곡군수는 “투병 중에도 열정을 불살라 사람들에게 ‘늦어도 할 수 있다’는 감동을 준 서무석 할머니를 잊지 않고 추모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