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통합우승을 달성한 KIA 타이거즈 이범호 감독이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아 타이거즈의 12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이범호 감독이 선수 아내의 생일에 꽃다발과 케이크를 보낸 사연이 공개됐다.

3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기아타이거즈 이범호 감독이 선수들 아내의 생일을 챙기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내달 1일 발간되는 ‘압도하라 타이거즈’ 일부 내용이 발췌돼 올라왔다.

이 감독은 이 책을 통해 사업체를 운영하는 지인으로부터 ‘선수 아내의 생일을 챙기는 감독이 돼라’는 조언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 감독은 “그동안 들어왔던 감독, 리더에 대한 조언과는 너무 다른 이야기였다”면서도 “그런데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아 실제로 해봤다”고 했다.

이어 “사흘 정도 지나 처음으로 이우성 선수 아내 생일이 있었다. 그날 그 선수가 제게 오더니 손을 잡고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아내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감독님 꽃다발이랑 케이크를 받고 너무 좋아했다더라”고 했다.

다음 차례로 아내 생일을 맞은 최형우도 이 감독에게 감사 메시지를 남겼다. 여기에 이 감독은 “넌 야구만 신경 써. 집안일은 내가 챙겨”라고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이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시즌을 치르면서 아내 생일을 못 챙기는 경우가 있다. 원정 일정이 겹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시즌 때면 잠도 잘자고 컨디션 관리를 잘해야 하는데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영향이 있을 수도 있다”며 “그걸 조금이라도 덜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했다”고 말했다.

KIA 이범호(앞) 감독이 28일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선수들과 ‘삐끼삐끼 춤’을 추고 있다./정재근 스포츠조선 기자

선수의 아내를 챙기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서는 “선수만큼 힘든 사람이 아내다. 아이도 키워야 하고, 남편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게 정말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소하지만 이렇게 아내들을 잘 챙기면 아내의 기분이 좋아지고, 그 기분이 우리 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며 “그럼 우리 선수들도 기분 좋게 출근하고 더 편하게 운동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 했다.

선수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 감독은 “팀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대체로 기혼자다. 생각보다 반응이 더 좋은 것 같아 다행”이라며 “미혼인 선수들도 어떻게 챙겨줄 방법이 있는지 고민해 볼 것”이라고 했다.

이 감독은 “감독이 그런 것까지 챙겨야 하냐고 할 수도 있다”면서도 “근데 이렇게 하면 선수들이 아침에 나올 때 웃으면서 나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고 덧붙였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의 1980년대생 ‘MZ 감독’ 이범호는 2019년 기아 타이거즈에서 현역 은퇴한 뒤 올 시즌부터 기아 감독직을 맡아 통합우승을 이끌었다. 기아의 13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이자 7년만의 우승이었다.

이 감독은 우승 후 인터뷰에서도 “스프링캠프가 열린 호주에서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것 하라’고 했다. 이 약속을 올 시즌 내내 지켰다. 감독의 눈치를 보는 선수가 없어지도록 노력하겠다. 사실 많은 선수는 자기 기량을 못 펼치고 운동을 그만둔다. 기량을 펼치는 선수가 많도록 팀을 이끌겠다”며 선수들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