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승률이 높은 수만 둘 뿐, 명국(名局)을 둘 순 없어요. 그게 인간 바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죠.”
이세돌(41) 전 바둑 기사는 1일 서울대 주최로 연 ‘인공지능과 창의성의 미래’ 특별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장문의 글과 이미지, 영상까지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은 최근 출판·미술·음악 등 인간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창작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다. 이세돌은 전치형 카이스트(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와 이날 강연에서 인간이 AI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두고 대담을 나눴다. 서울대 학생 130여 명이 참석했다.
이세돌은 ‘AI를 마지막으로 이긴 사람’으로 불린다. 2016년 3월 13일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고와의 네 번째 대국이었다. 이후 누구도 AI를 이기지 못했다. 이세돌은 “승리 당시 사람들은 ‘인간이 AI를 이겼다’고 환호했지만, 나는 그 대국을 바둑이 아닌 보드 게임에 그친다고 생각한다”며 “알파고에 승리한 대국 때문에 은퇴했다”고 했다. 이세돌은 “인간은 바둑을 둘 때 ‘최선의 수’를 찾는데, 알파고는 ‘승률이 높은 수’를 둔다”며 “알파고 이후 바둑 세계가 최선의 수가 아닌, 승률만을 계산해 기괴하다”고 했다.
이세돌은 승패만이 바둑의 전부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바둑은 승패가 결정된다고 해도 그 순간 끝난 게 아니다”라며 “복기할 때 가장 창의적인 수가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AI와는 복기를 할 수 없고, 서로 대화할 수도 없다”며 “AI는 ‘승률이 높아서 이렇게 뒀다’는 답을 할 수 있겠지만 그러면 결코 명국이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이세돌은 “바둑 인생에서 정수(正手)를 둬 명국을 두는 걸 목표로 삼았다”며 “하지만 은퇴까지 명국을 두지 못했다”고 했다. 이세돌은 “내가 바둑을 예술로 배운 마지막 세대일 것”이라며 “이제는 바둑을 둘 때 혼자서 생각하거나 공동 연구하지 않고, AI 프로그램을 돌려서 AI를 흉내 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아쉬워했다. 이세돌은 AI 시대를 준비하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는 “바둑 세계에선 AI를 따라서 정답만을 찾고 있는데, 예술은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