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우승을 차지한 LA 다저스에는 ‘LA의 손자’로 불리는 토미 현수 에드먼(29)이 있다. 그는 한국인 어머니를 둔 한국계 미국인이다. 이번 포스트 시즌 16경기에서 타율 0.328(61타수 20안타) 2홈런 13타점을 기록하며 다저스 우승에 결정적인 몫을 했다. 내셔널리그 챔피언 결정전(NLCS)에서는 0.407 1홈런 11타점으로 시리즈 최우수선수(MVP)도 거머쥐었다.
손자가 우승하자 가장 기뻐한 사람 중 하나는 외할머니 데보라 곽(80·한국 이름 정태후). 에드먼의 한국 이름 ‘현수(賢洙)’를 직접 지은 주인공이다. 지난 3일(한국 시각) LA에 사는 곽 여사를 전화로 만났다. 곽씨는 “현수가 너무 자랑스럽다. LA 한인들이 현수를 ‘우리들의 손주’라고 부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큰 외손자 조니에 이어 1995년 5월 9일 둘째 외손자 토미가 (미시간주에서) 태어나자 딸 경아(모린 에드먼)가 ‘한국 이름을 중간 이름으로 넣고 싶다’고 해서 고심 끝에 골랐다”면서 “‘현명하고 빼어나다’라는 의미와 더불어 수(洙)에 ‘물 수’ 변이 있어 빠르다는 뜻도 함께 담았다”고 설명했다.
곽씨는 “어렸을 때부터 (현수는) 남다른 재능을 보이던 아이였다.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명문대(윌리엄스 칼리지)를 나온 사위와 딸을 닮아 공부도 잘했고 야구도 잘했다. 손주가 남에게도 존경받고, 자기 자리에서 빛을 발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에드먼은 이름 그대로 성장했다. 초등학교 때 야구를 시작한 그는 고교 시절에도 우수한 성적(졸업 평점 4.5 만점에 4.48)을 바탕으로 스탠퍼드대에 야구 장학생으로 진학했다. 계산과학(Mathematical Computational Science) 전공으로 3년 반 만에 조기 졸업했다. 졸업 평점 3.82. 스탠퍼드대 야구부 100년 역사에서 가장 높은 평점이었다고 한다.
에드먼은 졸업 후 MLB 도전을 택했다. 2016년 MLB 신인 선발에서 6라운드 196순위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지명됐다. 177㎝ 81㎏으로 리그에선 비교적 작은 체구지만 성실성으로 극복했다. 마이너리그를 거쳐 2019년 메이저리그에 데뷔, 2021년 내셔널리그 골드글러브를 수상하면서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올해 다저스로 이적한 뒤엔 더 빛을 발했다. 포스트 시즌 내내 다저스 중심 타선에서 맹활약했다. 곽씨는 “(보통 손자를 보러 경기장에 가지만) 리그 챔피언 결정전 마지막 날엔 집에서 TV를 보면서 결과를 기다리는데 잠시 다른 일로 한눈을 판 사이 갑자기 전화가 막 쏟아지더라. 알고보니 손주가 MVP를 받았더라”라고 전했다.
곽씨는 한국에서 고려대 상대를 졸업하고 체이스맨해튼은행 서울지점 창립 멤버로 일했다. 그는 “은행 일 하며 기초를 다지고, 이민 후에도 은행에서 일하며 가족을 부양했다”고 했다. 곽씨는 수의사인 남편(곽민수)과 두 딸 경아·현아와 함께 1977년 미국으로 이민 와 LA 인근 몬테레이파크에 자리를 잡았다. 은행 경험을 살려 LA에서도 가주외환은행(CKB)과 하나금융에서 오래 일했다.
큰딸 경아씨(토미 어머니)는 같은 학교를 다니던 남편(존 에드먼 주니어)을 만나 대학을 졸업하던 해 결혼했다. 곽씨는 “처음엔 딸 결혼을 반대했지만 결국 승낙했다. 좋은 가정이 될 것 같았다”고 했다. 이어 “사위가 야구를 굉장히 좋아했다. 그래서 애들이 어렸을 때부터 야구장에서 자랐다”고 덧붙였다.
토미 아버지 존 역시 대학(윌리엄스 칼리지) 야구부 출신으로, 이후 미시간대에서 박사과정을 밟다가 중단하고 지금은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라호야 컨트리데이스쿨에서 수학 교사와 야구부 코치를 겸하고 있다.
토미 할아버지 존 에드먼 시니어는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 금융 계열사 GMAC에서 회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곽씨는 “토미의 할아버지가 정말 대단한 분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토미의 형 조니는 휘턴 칼리지를 나와 MLB 미네소타 트윈스 전력분석원으로 있다. 여동생 엘리스도 컴퓨터과학을 전공하고 MLB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일하다 지금은 IT 회사 연구원으로 있다. 야구가 가족의 공통 전공이었던 셈이다.
곽씨는 “현수가 오이김치랑 잡채를 특히 좋아한다. 한국 음식을 먹을 때마다 한국인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여기더라”면서 “한국계라는 정체성에 자부심이 있다”고 했다. 그 자부심이 지난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하게 된 배경이다. 지난해 3월 WBC 훈련을 위해 한국에 입국했을 때 토미는 “외할머니가 한국 문화를 알려주셨다”면서 “연장자에게는 정중하게 인사해야 한다고 하셨다”고 말한 바 있다. 곽씨는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고, 한국 대표로 경기에 나서면서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 기쁘고 또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곽씨는 토미가 처음 미국 프로야구에 발을 들였을 때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2개는 받아야지’”라면서 응원했다고 한다. 그는 “이번에 다저스가 우승한 뒤 ‘할머니가 말했던 반지 이제 1개 남았네’라고 말하자, 손주가 ‘프레이 포 모어(Pray for more)’라고 답했다. 기특하고 장하다”고 말했다. “워낙 다재다능한 아이다. 만약 (선수 생활을 마친 뒤엔) 감독으로 선수들을 지도하면 멋진 여정을 이어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